근데 제주 가서 ‘뭐’해야 해?
감귤과 관광, 그리고 부동산
80년대 제주로 신혼여행을 오셨던 부모님의 빛바랜 사진 속 제주의 모습은 푸르렀습니다. 사진속엔 형광색의 감귤과 구멍난 검은 화산암이 대비를 이뤘으며, 말 역시 빠질 수 없는 요소였죠.
그리고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제주는,
지난 5년새 통계치로도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국내/중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국내 관광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물론 사드 여파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줄어들었지만, 최근 한-중 화해무드가 조성되며 지난 주부터 그 수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붐비게된 제주에는 수없이 많은 숙박업소와 요식업소가 들어섰고, 이는 중국자본의 유입을 야기하며 부동산 / 건축 경기 호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제주를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 중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고, 변한 ‘삶과 업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저 방문에만 머물지 않고 제주에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만 월 약1600명이 제주로 이주를 했습니다. 변화된 ‘삶과 업에 대한 생각’이란 도시의 틀에 박힌, 차갑고, 빠른 템포에서 벗어난 나만의, 따뜻하고, 느린 템포에의 고민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주 일부 토지는 평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제주는 이제 감귤보다는 부동산이 핫한 섬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이제 제주보다는 남해”혹은 “강릉”‘과 같은 기사가 다뤄졌고, 중국의 한한령이 시작된 요즘, 따스해진 날씨와 함께 북새통을 이뤄야 하는 ‘중문색달 해변’의 노점상 분들은 “관광객이 요즘 줄어도 너무 줄어서, 그냥 까먹으라고 내놓은 감귤박스를 1/10만 둬도 될 정도가 됬다”며, “요즘은 2개 노점마다 격주로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감귤 농사는 자식 농사’라는 이야기가 흔했던 이 곳 제주의 모습은 이미 많이 달라진 것이지요.
시름시름 앓는 제주
‘감귤왕국’에서 시작된 영광이 ‘국내 관광의 메카’라는 호칭으로 이어지며 얼마전까지 ‘부동산 금맥’으로 추앙받았지만, 지금 제주는 아픕니다.
하와이 뺨치는 자본과 인구의 역습으로 제주시는 66만명 전체 제주 인구의 약 73%인 48만명이 모여사는 시멘트 내음새 가득한 중형도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주 안에만 35만대의 차량이 운행되며 이로 인한 교통체증이 생겨나고, 1인당 하루 배출하는 생활쓰레기가 전국에서 가장 높아지며 오폐수 처리시설의 용량이 초과되어 바다로 배출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육지에서의 기준과는 동떨어진 임금으로 임금격차까지 발생하는 곳. 어쩌면 서울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벌어지는 곳이 이 곳 제주입니다. (자료 : 연합뉴스)
어쩌면 제주는 더이상 매력적인 섬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직 영글지 않은 제주의 다른 ‘키워드’
지금까지 제주를 관통했던 주된 키워드는 감귤, 관광, 부동산. 이 3가지 였습니다. 이들은 제주에서 존재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물건’ 혹은 ‘물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주의 사람과 제주의 문화보다는 특산물, 멋진 풍광, 그리고 이를 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한마디로 인적 자원 보다는 물적 자원이 주를 이루는 섬이었죠. 자연스레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을 비롯한 육지와의 교류와 이를 통한 업무를 하기보단 제주에 중심을 둔 일거리에 몰두하게 됐습니다.
이와같이 기존에 주로 행해지던 제주에서의 일과 업무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제주는 그야말로 누군가에겐 관광지 혹은 별장 수준의 섬에 불과할겁니다.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기존의 업무 방식으로는 다른 종류의 일을 하기엔 다소 어려운 점들이 많은 곳이 제주입니다.
분명 제주의 삶은 도시의 그 것보다 느립니다. 또한 육지와의 거리적인 제약 역시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도시의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을 스스로와 가족을 위해 할애할 수 있고, 하루도 도시의 문명을 이용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저가항공의 발달로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저렴해진 비행기표는 원하는 때에 서울로 이동하여 도시문명을 즐길 수 있게 해줬습니다. 결국 제주도에서의 삶은 어떤 삶을 살겠느냐에 대한 본인의 뜻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요. 이처럼, 제주의 삶에 대한 환경은 다양한 개인을 매료시켜 제주로 이주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IT를 비롯한 디자인, 예술 분야의 다양한 개인/기업들이 제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여기 제주에, ‘삶과 업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몸소 거치며 제주를 다채롭게 하고자 하는 개인/그룹들이 있습니다. 무작정 제주에 내려와 제주에서의 일을 찾는다거나, 자신의 전문영역을 ‘리모트’라는 업무형태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리모트 할 수 있는 기업을 찾고’, ‘스스로를 PR해야하며’, ‘제주의 삶과 창업을 병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래는 이런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좋은 팁이자 첫 단추들입니다.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
제주에서 개발자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REMOTE’ + ‘프리랜서’ 일이 필요하다는 것과, 개발자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개발자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로,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가 있으면 어떨까? 제주에 내려온 프리랜서는 기질상 외톨이가 많을 것 같지만 그래도 느슨한 정보 공유 커뮤니티가 있으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by 김종욱님의 글을 보고 시작된 그룹입니다.
2015년부터 가족과 함께 제주에 정착한 E-Book 작가 박산솔님이 한국 첫 탑텔(toptal)러 김종욱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만든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는 가장 캐주얼하면서도 제주 프리랜서들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개발자, 디자이너라면 이 커뮤니티에서 그간 나눠진 대화와 자료만 보아도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들과 어려움/해결책에 대해 감을 잡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직접 제주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제주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질문을 통해 여러 방면으로 제주의 삶을 문의할 수있음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콜라보/직접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는 제주시에 집중된 일자리, 창업, 만남의 기회를 서귀포 지역까지 넓혀 더 많은 제주의 숨은 능력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제주 창조경제 혁신센터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다른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와는 조금 다르게 제주 IT 역사의 레전드 였던,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이어진 ‘카카오’와 협업 관계를 맺고 있는 ‘공공기관’ 입니다. 센터가 가진 방향성 또한 관(官)이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하는 형태가 아닌, 관의 주도로 할 수 있는 부분은 관이 담당하고 개인과 기업이 자연스례 형성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 창조경제 혁신센터의 협업공간인 J-Space의 경우는 ‘제주크레비티’, ‘런치합시다’ ‘사업 피칭 데이’와 함께 ‘제주 한달 체류 지원’ 등 제주에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제주로의 정착을 생각하는 여러 지역의 다양한 재주꾼들이 모이는 장이기도하며 코워킹(Co-Working)공간 또한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회사, 카일루아의 프로그래머 김동하님과도 2015년 10월에 있었던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주최의 해커톤을 통해서 한팀으로 처음 만나게 되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센터의 위치가 제주 시내에 있는 관계로 제주의 풍광과는 조금 거리가 있으며, 제주 전역 보다는 제주시와 관련한 내용이 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오픈 컬리지 ‘제주’
다음으로 지난해 제주 서귀포 중문에 2번째로 문을 연 ‘오픈 컬리지’가 있습니다. 오픈 컬리지 ‘서울’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있는 능력자들이 서로의 이야기, 재능을 공유하는 곳으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위 ‘힙’한 곳이었습니다. 왜 오픈 컬리지가 제주에 그것도 서귀포 중문에 2번째로 문을 열게된 경위(?)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오픈 컬리지 제주를 통해 제주의 숨은 고수들이 속속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픈 컬리지는 올해 초부터 'Open Univ'라는 대안 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 12만원 이라는 등록금으로 IT / 경엉 / 디자인 분야를 학생 각자가 조합-선택하고 본인이 원하는 프로젝트 수행하며 학습하는 새로운 대학의 형태입니다. 서귀포에 위치한 이들 그룹으로 인해 새로운 인재들과 분위기가 조금은 소외되었던 제주 남부 지역에 새로운 움직임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제주에서의 삶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천에 널린 바다가 그들의 서핑 스팟이기도 하고, TV 대신 가족과 함께 올레길을 걷고 바다를 보고 오름에 오를 수 있기도 하고, 콘크리트 숲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화려한 불빛 속 외식/회식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곳이 제주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에 대한 로망만 가득한 채 업에 대한 고민과 대책 없이 내려온다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다시 한번 느끼며 쓸쓸하게 제주를 떠나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이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1-2달 체류하고 정착 하기도 하지만, 막상 그 기간이 장시간 지속되지는 못하는 이유일겁니다.
제주가 나아가야할 방향
농업 위주의 제주 인력 구조는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후에 일어난 관광 산업의 붐에 급하게 맞춰가느라 ‘제주를 온전히 지켜가는’ 방향으로 그 이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주의 농업도, 관광도 시들해져가는 이 시점에 부동산 호황마져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지금이 제주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제주가 제주다울 수 있으면서도 그 스스로가 다음세대를 위해 준비할 기회. 감귤, 한라산 소주, 천해의 환경을 이야기 하며 구태연한 제주만을 헐떡거리면서 채워가는 것이아니라, 제주의 모습을 밖으로 공유하고 밖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며 농업, 관광업에서 더 나아가 ‘삶과 업’을 고민하고 개선해 나갈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 말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컨텐츠랩 ‘카일루아’
필자가 속한 회사, '카일루아'는 단순한 제주 여행 컨텐츠의 제공을 넘어서 제주라는 곳의 정체성을 찾아 컨텐츠로 개발하고 그 컨텐츠가 제주를 원하는 다양한 사용자층의 입맛에 맞춰 제공될 수 있는 기술적, 심미적 요소를 담은 플랫폼, '데일리 제주'를 운영/개발하고 있습니다. 트래픽 시장에 얽매인 컨텐츠 시장에서 벗어나 사용자에게 개별화된 컨텐츠를 제공하고 여기에서 나온 인사이트가 다시금 컨텐츠에 재활용 될 수 있는 과정은 딥러닝과 AI로 이야기되는 IT 분야와 시각적인 영상/컨텐츠 분야 뿐만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과 업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카일루아’는 IT,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서로 협업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을 중시하고’, ‘빠른 발전보다는 담론을 나누기도 하며’, ‘그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삶과 업’의 과도기 이후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봄날이 옵니다
따스한 봄내음이 제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카일루아 뿐만 아니라 제주의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진짜 봄날을 위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봄날이 다만 제주를 위한 것에서 넘어서 우리들의 미래를 위한, 봄날을 위한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놀러오세요. 이야기하러 오세요. 그러다 함께해요.
제주에서, 카일루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