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g Jun 28. 2020

이직을 대하는 자세Ⅰ : 왜? 그리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10년을 몸담은 회사를 떠나며-

나는 지금 10년을 일한 직장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시작할지를 결정하는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나의 첫 직장은 안에서 보기에도 밖에서 보기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잘 다듬어진 보석과도 같았다. 나는 이 곳에서 내 인생에 양분을 주는 선후배들을 만났고, 정신적으로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보석 같은 동기들을 만났다. 그리고 때로는 맨땅에 헤딩하며, 때로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혹은 내가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나가며 일 하는 사람으로서의 전문성을 키워 나갔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2번의 승진, 결혼, 몇 번의 부서이동, 7명의 상사를 거쳤고 운이 좋게도 훌륭하고 성격도 좋은 팀원분들을 만나 회식이나 워크숍도 즐거웠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 직장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이유는 주니어 때와는 달리 시니어로서의 learning curve가 점점 둔화되고 input 보다는 output, 그러니까 배우는 것보다 이뤄내야 하는 성과의 양만 더 커졌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과를 내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이 나의 성장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이직 사유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일하는 것이 재미가 없어서였다.


혹자는 회사는 '그냥 돈 버는 곳이고 재미는 밖에서 찾는 거지'라고도 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점점 회사일에 흥미를 잃어가는 나를 보며, '남들은 다 알고 있는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았구나' 라며 그동안의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재미없으면 왜 일해? 나가야지"라고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회사에서도 재밌고 싶었다. 내가 연봉이나 이직 따위는 고민하지도 않고 그냥 신나게 일하던 그 시절처럼…




사실 꼭 이직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부에서도 좋은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회사의 성장은 점점 둔화되고 있었고 링크드인을 통해서 접하는 외부의 제안들은 내부의 선택지 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의 면접을 보았고, 아직은 작지만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이커머스 회사의 마케팅 팀장으로 첫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익숙하고 안정된 바운더리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직을 마음으로 결정하고 나서도 내 마음은 계속 아무도 없는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을 거니는 것처럼 불안했다. 이직의 명분과 논리가 분명했음에도 불구했음에도 말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사와 정을 떼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이 이직의 합리성과 많은 장점들을 헤아리고 있었지만 내 감정은 아직 첫 직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나도 모르게 너무나 익숙해진 회사의 분위기와 사람, 그리고 업무 스타일.. 그리고 나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미 나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많은 것들...  


(지우고 싶은 과거지만) 마지막으로 대표님, 그리고 나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의 보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은 나조차도 당황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그건 나의 이직이 마치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한 때는 서로 사랑했고 충실했으며 열정적이었던 관계를 지나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 하지만 연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지내는 커플. 겉보기엔 별 문제가 없지만 이 커플의 사랑은 이미 바래져있다. 과거의 즐거운 추억들을 곱씹으며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고 있을 뿐… 서로를 미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그냥 익숙한 관계로 존재하는 연인. 이제는 헤어져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행복함을 인지하고 있지만 쉬이 이별을 결정하지 못하는…


마지막 순간의 나와 첫 회사의 관계는 그런 바래지고 퇴색된, 껍데기만 남은 연인들과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이별이라고 어디 쉬까? 마음을 다했던 사이라면, 이 세상에 쉬운 이별은 없다.

남들 다 하는 이직인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든가? 왜 이렇게 유난인가?라고 나에게 원망 혹은 탓을 해보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평소엔 하지도 않는 내 마음속 이야기들을, 이직에 대한 힘든 마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도 하고 다녔다.


*** 사실 나는 대학생 시절 두 달이 넘는 유럽여행도 티켓팅 후, 부모님께 통보하는 독립적이고 쿨한 뇨자다. 결정에 있어 주관이 뚜렷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게 좋아? 저게 좋아?라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이런 내 모습은 나를 당황시켰다. ***  (물론, 유럽여행의 경우, 부모님의 허락은 내 돈으로 갔으니 가능했다.)  


나도 미처 몰랐다. 내가 회사를 이렇게나 사랑했는지…  


그래서 회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회사에서 인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퇴직 인사를 전하며 지금의 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몇몇 사람들에겐 선물도 했다. 직장동료들은 축하와 아쉬움의 인사를 전했고 직장 선배들은 나에게 첫 팀장이 되는 것에 대한 많은 조언들을 해주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직장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했고, 내가 운이 좋은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직, 사실 누구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이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직을 하는지? 그래서 사람들과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지? 등 그 마음은 모두가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좋은 포지션으로 이직을 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말에는 기뻤지만 '탈출을 축하한다'라는 등의 부정적인 뉘앙스의 인사에는 쉽게 웃질 못했다.

그렇게 나는 첫 회사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은채… 회사를 떠났다.


안녕. 내 첫 회사, 첫사랑

다음번 이직은 조금 더 쉽겠지. 나는 이제 첫 발을 내디뎠을 뿐이니까.

나의 시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은 바로 회사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나의 경험과 성장이라는 가치를 향해 도전했다. 두 번째 처음과는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처음보다 좋지 않을 것이란 법도 없다.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르지!

작가의 이전글 대한민국에서 '봉'씨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