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일하는 게 즐거운 10년차 PO의 5가지 특징
오랜만에 기고글이 아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왠지 모르게 즐겁다.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이 일에 대해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팀원들과 슬랙으로 이야기를 하던 중 '본디'(*본인의 아바타를 만들어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앱)라는 앱이 요즘 핫하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요즘 엠지세대들에게 핫하다는데, 트렌드에 뒤처질 수 없는 나는 빠르게 본디를 설치하고 내 캐릭터를 만들었다. 또, 과거 싸이월드처럼 상태메시지를 만들어 놓을 수 있어서 느끼는 감정 그대로 상태를 설정해 뒀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팀 동료가 "이거 뭐예요..? 이 정도면 광기...?"라고 내 캐릭터 캡쳐본과 메시지를 보내왔다(ㅋㅋㅋ) 그래서 진짜 일하는 게 즐거워서 즐겁다고 한 거라고 답했더니 이어서 다른 캡처사진을 보내왔는데 다른 친구들의 상태 메시지는 "으 지겨워", "일하기 싫다", "퇴근하고 싶다" 등으로 쓰여있었다. 그들 사이에 있는 내 캐릭터는 광기가 분명해 보였다. 동료와 재미있는 대화를 마치고 내 상태메시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일하는 게 (아직도) 재밌을까?
오늘은 내가 같은 업계에서 10년 넘게 기획자, PM, PO 등으로 일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자주 '덕업일치'라는 말을 언급한다. 왜냐면 진짜 그렇게 느끼고 있어서이다. MBTI가 ESTJ(*엄격한 관리자)인데 여기서 설명하는 부분도 대체로 맞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앞에 나가 발표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반응해 주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했다. 그리고 계획 세우는 것도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각종 노트에는 계획이 빡빡하게 기재되어 있다.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며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게 나 자신이 어제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게 해서인지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대학교 때 팀플을 하거나, 조모임, 스터디를 할 때 대부분 조장이었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이런저런 스터디를 만들어서 스터디를 운영하기도 했다. 남들은 귀찮아서 하기 싫어하는데 나는 그저 재밌었다.
스터디에 필요한 여러 정책을 정하고, 방향성을 정하고 룰을 정하는 것들이 재밌어서 자발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하는 일을 생각해 보면 결국 서비스의 방향성과 전략을 수립하고, 로드맵을 짜고, 짜인 로드맵에 맞게 프로젝트를 리딩하는데 항목 하나하나가 내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건 아니라 지금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어려운 일들을 풀어나가며 PO 일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이 너무 즐겁다.
내 성격은 대체로 급하고, 지루한 것을 잘 못 견뎌한다. 그리고 싫증을 잘 낸다. 그래서 어렸을 때 종종 끈기가 없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근데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빠르게 많은 일을 시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닐 때 나는 게시판을 매일매일 봤다. 게시판에는 스터디를 모집하거나, 활동, 파티, 동아리 등의 홍보글이 잔뜩 붙어 있었는데 여기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게 생기면 바로 신청했다.
그래서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다양한 대내외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때 했던 경험들이 좋아서 회사에 입사한 후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사내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외부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등에 정기적으로 참석했고 네트워킹 모임에도 적극 참석했다. 20대 초반에 창업동아리 UKOV로도 활동을 했고, 이 과정에서 소프트뱅크코리아 CFO와 스타트업의 대표님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고,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건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고, 이런 경험들이 쌓이니 여러 분야로 얕은 지식이 많아지고 업계에 아는 사람도 은근히 많아졌다.
또, 외부 활동이나 세미나를 통해 직무적으로 도움 될 만한 지식도 많이 알게 되니, 이 지식을 업무 하면서 많이 활용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 내에서 성과도 잘 받고 일하는 게 점점 더 즐거워졌다.
성과에 대한 욕심보다는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할 때 '성과가 잘 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라기보다 내가 해보지 못했던 과제나, 어려운 과제 위주로 해보고 싶었다. 과거에 해봤던 일들은 이미 경험해 봐서 잘하고, 빠르게 할 순 있지만 반복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성장이 둔화되는 느낌이 싫어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이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과제를 맡게 되면 내 선에서 파고들 수 있는 만큼 깊이 파고들어 잘 해내려고 노력한다. 일단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이 과정이 너무 즐겁고, 이 과정이 끝나고 프로젝트를 힘들게 오픈하고 나면 오픈 자체로도 성취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오픈 전까지 내 힘이 닿는 한 치열하게 고민하고,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아 넣는데 이렇게 열심히 한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놓는 순간의 경험이 짜릿하고 기분이 좋다. 이러한 성취감을 여러 번 맛보다 보면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너무 즐겁고, 일하는 시간이 즐거워진다.
업무를 하며 들었던 말이기도 하고,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도 집요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을 즐겨했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 키운 캐릭터로 활동하다 아이템 사기를 당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사기꾼 놈의 아이디를 보고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추가 정보를 획득해서 사이버범죄수사팀에 신고를 했었다. 이 과정이 결코 짧지 않았는데 며칠 동안 사기꾼 정보를 캐내려고 수많은 사이트를 웹서핑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후에도 부당한 일이나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증거를 수집하고, 정리해 두었다.
업무를 할 때도 이러한 습관이 반영되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모르는 부분은 알 때까지, 대부분의 것은 기록으로 남겨두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찾아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타 부서에서 요구사항을 줄 때도 '왜 하는지'가 이해되지 않으면 여러 번의 질문을 통해 이해가 될 때까지 왜 해야 하는지를 묻는 편이다.
데이터를 볼 때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A데이터를 보다 보면 A-1은 어떻지? A-2는 어떻지?라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면 그것들을 다 정리해 놓고 추가로 확인해봐야 할 데이터로 정리해 놓는다. 이렇게 업무 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고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며 추가적인 정보를 얻게 되었다. 같은 업무를 해도 더 깊이 알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되니까 또 다른 업무를 할 때도 활용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연결 지어 더 쉽게 할 수도 있으니 일을 할수록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를 하면서 즐거운 때만 있는 게 아니고, 어렵고 힘든 때도 분명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에 가서 울거나 퇴근길에 울거나 집에 가서 울곤 했다. 나는 서럽게 울면서 내가 멘탈이 약해서 작은 것에 상처받고, 울고 불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연차가 쌓이고, 많은 사람들과 이러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이 '멘탈이 세다'라는 피드백을 주었는데, 처음엔 동료들이 여린 나를 잘 모르고 주는 피드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들이 지나간 뒤에 내 감정, 느낌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니 나 스스로도 내가 멘탈이 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보통 멘탈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일에 상처받고, 주저앉고, 스스로 일어나기를 힘들어하는데 나는 작은 일에 상처는 받지만 이 상처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멘탈이 다쳐 주저앉기보다는 이 일을 토대로 '더 강해지자', '내가 더 잘해서 이런 일 없게 하자' 등의 다짐을 하며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전 회사에서 팀 이동 후 새로운 팀 사람들이 텃세를 부리며 과자를 나 빼놓고 지들끼리 먹을 때도 속으로 '나는 내일 더 맛있는 과자 갖고 와서 혼자 다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시 한번 나에게 있었던 일들과 나의 멘탈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나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었다. '더 이상은 못하겠어'라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이것도 못 버티면, 다른 일을 해도 못 버틴다'라는 생각으로 전환하고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불평할 시간에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을 하는 시간으로 채웠다.
처음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빠르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는 건 어려움이 있었는데, 멘탈이 좋아지는데 크게 기여한 건 '체력'이었다. 몇 년 동안 헬스, 수영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하며 기초 체력이 약해지지 않게 관리했다. 물론 처음엔 체력을 키우려는 목적보다는 다이어트 목적이 강했는데, 습관화되다 보니 체력이 덩달아 좋아졌다. 체력이 좋아지니 아침에 일어나도 피곤하지 않고, 오래 업무를 해도 크게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일할 수 있었고,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게 멘탈과 체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했음에도 여전히 일 하는 게 즐거운 지에 대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보통 같은 일을 오래 하면 지겹고,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 땐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갔는지?
내 멘탈이나 체력이 너무 약하진 않은지?
매번 상황이나 환경에 대한 불평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고, 기여를 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 글에서도 말했듯 나는 내 성향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잘 맞아 덕업일치라고 생각하고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성취욕구가 강하며, 집요한 성향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내가 가진 성향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시너지가 난다고 느끼면 업무가 즐거워지는 것 같다. 여기에 가장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멘탈과 체력이다. 이 글을 읽고 위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해보고, 지금 하는 일이 재미없다면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또는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자.
마지막으로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일부 발췌하여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