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기업에서 특정 제품의 PO로 일하며 깨달은 PO의 역할에 대하여
앞서 쓴 글 나는 어떻게 PO가 되었는가? 에서 11년 동안의 커리어 패스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유니콘 기업의 PO(Product Owner)로 입사해서 제품을 담당하며 어떤 업무를 했고, 어떻게 일했으며 무엇을 배웠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사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약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간 참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들 5가지에 대해 시리즈 형태로 공유하려고 한다. 시리즈의 첫 글로는 'PO의 역할'에 대한 글이다. 책에서 읽고 강의를 보며 배운 PO의 역할이 실제 기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나의 경험을 공유할 예정이다.
PO의 역할에 대해선 사람마다, 그리고 각기 다른 관점마다 다를 수 있으니 이 점을 기억하고 지금부터 공유할 나의 경험이 무조건적인 PO의 역할이 아님을 인지하고 읽길 희망한다.
입사 첫날, 최신형 맥북을 받고 신기해할 틈도 없이 다룰 줄도 모르는 맥북을 들고 이 회의, 저 회의에 초대되어 참관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입사 첫날은 여유롭게 팀원들과 커피 마시며 자기소개하고, 맛있는 점심 먹고, 점심 먹고 와서는 컴퓨터 세팅을 하며 하루를 보냈었던 것 같아서 당연히 그럴 거라 기대했는데 첫날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회의에 들어가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아 당황했다. 기대와 다른 입사 첫날을 보내고 입사한 주부터 특정 제품의 PO가 되었고, 당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전 직장에서 PM으로 일할 땐 전체적인 전략이나 방향성에 대해서 리더가 지시하는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여기선 '네가 담당할 제품은 OO이야. 자, 그럼 잘해봐!'의 느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인수인계는 컨플루언스에 작성된 문서 위주로 하루, 이틀 정도 받고 진행 중인 과제에 대한 간단한 히스토리와 진행상황에 대해 공유받은 후 입사한 지 일주일 된 내가 이 과제의 assingee가 되어버린 것이다.
첫 담당 프로젝트는 'ATF(*Above the fold, 스크롤 전 화면에 보이는 첫 부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보여주어, 고객의 이탈을 막아보자'는 목적을 가진 과제였다. 내가 인수인계받을 땐 이미 디자인까지 나와있었고 디자인 나온 대로 개발을 요청하고 오픈하면 된다고 전달받은 상황이었다.
나는 이전 회사에서 해왔던 대로, 그리고 인수인계받은 대로 프로세스에 따라 프런트에 개발을 요청하고 개발 일정을 받고, 배포 일자를 확정했다. 중간중간 인수인계해 준 담당자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리더에게 상황을 공유했다. 배포 D-7 배포 전 전사에 사전 공지를 보내는 게 프로세스에 포함되어 있어 사전 공지를 보냈다. 개발이 완료된 상태고 당장 QA만 진행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리더가 시안이 우리의 목적과 맞지 않아 보인다고 피드백을 줬다.
갑작스러운 피드백에 나는 너무 당황했다.
'중간중간 공유도 했는데 왜 개발 완료 후 이런 피드백이 온 거지?'라는 생각과 '내가 보기엔 현재 시안이 목적과 싱크가 잘 되는 것 같은데?' '잠깐, 근데 제품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은 PO가 하는 거 아닌가?' '내가 PO의 역할을 착각한 걸까?' '모두 컨펌을 받고 진행해야 하나?' 등의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저녁 7시쯤 피드백을 받고, 당황스러움과 이런저런 생각으로 방향성을 잃은 채로 한두 시간을 보내고 혼란스러운 부분에 대해 정리하여 답변을 보냈고,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대화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았다.
나 : 해당 과제의 경우, 인수인계를 받을 때 ~~~ 한 목적으로 진행하는 과제이고, 디자인까지 나와있는 상태에서 제가 F/U만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또, 제가 전달받은 목적과 시안이 제가 판단하기엔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 같은데 제가 잘못 이해한 걸까요? 해당 과제의 배포는 00월 00일이고 현재 개발 완료되어 당장 내일부터 QA 진행 예정입니다.
개발 완료 후 배포 시점이 정해져서 전사 공지를 보냈는데, 현시점에서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피드백을 주실 경우, 이다음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행하면 될까요? 또, 제가 이해하기론 PO는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제 진행 시마다 리더의 '컨펌'을 받고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제가 이해한 PO의 역할과 책임이 현 기업에서 생각하시는 PO의 역할과 다른지 추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더: 이 과제는 ~~~ 한 목적으로 진행된 과제이고, 배경은 ~~~ 합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시안은 목적에 맞기보단 '이 정도면 됐다'로 디자이너와 타협한 시안으로 보이므로 목적에 맞게 PO가 중심을 잘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시안은 우리의 비즈니스 목적에 맞게 현재보다 ATF 영역을 더 확보할 수 있는 형태로 변경 요청하고, 이에 맞게 개발 수정도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목표한 배포 일정에 맞출 수 있는지 다시 체크하고 이번 배포에 맞출 수 없다면 배포 시점을 연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관련하여 공지 수정이 필요할 경우 수정 후 재발송해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PO의 역할은 제품의 성장을 위해 전략,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과제를 잘 진행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의 의사결정은 전반적으로 PO가 하는 게 맞지만 제품 전략이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저와 Sync 하고 진행해주세요. 이번 과제의 경우 배경, 목적과 맞지 않는 시안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니 이후 과제의 경우 방향성은 저와 먼저 논의해주시고 스스로 의사결정 후 공유만 부탁드립니다.
답변을 확인하고 여러 번 다시 읽었다. 리더가 생각하는 PO의 역할과 내가 생각하는 PO의 역할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에서의 문제는 '전략/방향성에 대한 Sync'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라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이 기업에서 PO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갖고 업무를 하는지, 그리고 어떤 프로세스로 업무를 진행하는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 이미 방향성이 결정된 후 디자인이 작업된 상태에서 중간에 인수인계를 받아 내가 방향성을 싱크 하기엔 타이밍이 이미 지난 상태라고 판단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에 대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로 기존 진행되고 있던 과제의 방향성에 대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입사 후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라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뭔가 생각한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아 속상했다. 마음 아파할 새도 없이 나는 리더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빠르게 디자인, 개발을 수정하고 배포 일정을 다시 체크해야 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QA가 코앞인데 수정을 요청하여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 강조하며 빠르게 수정을 요청했고, 원하는 일정에 배포했다. 첫 프로젝트가 너무나 매운맛이었다.
한편으론 입사 후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PO에 역할에 대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이후 업무를 진행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첫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이슈가 없었다면 이 기업에서 PO가 어떤 권한을 갖고 어느 정도의 의사결정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애매한 상태로 업무를 진행했을 수 있을 것 같다.
입사 후 재직한 지 1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제 회사에 100% 적응하고, PO의 역할을 큰 어려움 없이 수행하고 있었을 때 다른 PO와 겹치는 지면에 대한 R&R 이슈가 생긴 적이 있었다. 나는 A 제품을 담당하는 PO로서 A 제품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지면까지 같이 담당했는데, A 지면은 내가 담당하는 영역이나 A지면에 들어가는 1,2,3,4의 영역은 각각의 PO 또는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A지면의 1번 영역에 수정 이슈가 발생하거나 고도화가 필요한 경우 1번 영역을 담당하는 PO와 상의하여 방향성을 논의해야 했다.
문제는 여기에서의 R&R 이슈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A지면 전체는 내가 담당하지만 A지면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는 각각의 담당자가 있어서 '이 과제를 누가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가?'가 매우 헷갈렸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리더에게 문의하자 리더는 'A지면의 PO와 각 영역의 PO가 같이 논의해서 해결하라'라고 답변을 주셨는데 둘 다 서로의 업무로 바쁠 경우 누가 이 과제를 리드해야 하는지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게 서로 발 하나씩 걸친 채로 업무를 진행하다 답답한 마음에 리더에게 1on1을 신청했다.
나 : A지면은 제가 담당하는 제품의 페이지인데, 제 제품 페이지에 각 영역이 다른 PO인 게 너무 헷갈립니다. 제가 주도해서 리드하면 되는 건지, 아니면 그 영역의 PO가 리드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업무를 하면서도 제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고 어떻게 업무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 가이드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더: 예를 들어볼게요. 당신은 A가게를 갖고 있는 사장이에요. A가게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엄청 다양하고 그 품목을 공급하는 공급자는 각각 달라요. 당신은 A가게에서 어떤 품목이 잘 팔리는지, 잘 팔리지 않는지를 알고 있고 어떻게 배치를 해야 매출이 증가하고, 고객이 더 많이 찾는지 고민하겠죠. 당신 파는 가게에서 잘 팔리는 않는 품목의 경우 그 품목을 공급하는 공급자에게 '너의 제품이 잘 판매되지 않으니 우리는 네 제품을 더 이상 팔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너의 제품이 잘 판매되지 않으니,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설명한 대로 당신은 A지면의 사장이고 A지면에 각각의 영역은 하나의 상품이고, 그 상품마다 공급자는 다를 수 있어요. 사장은 당신이니 각 지면을 뺄지, 말지, 상단으로 순서를 조정하여 더 보여줄지, 하단으로 순서를 조정하여 덜 보여줄지, 상품의 업그레이드를 요청할지는 당신이 판단하면 돼요.
너무나 명쾌한 답변이었다.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헷갈려했던 부분에 대해서 완벽하게 해소되는 답변이었다. 현 직장을 다니며 가장 좋았던 점은 이처럼 리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납득할 만큼 충분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상태로 계속 업무에 임했다면 PO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 대화를 통해 이해한 PO의 역할은 ‘내가 주체가 되어 주도적으로 제품의 방향성을 정하고, 제품 성장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해당 영역의 담당자 또는 PO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요청 또는 제안하고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위 예시처럼 PO의 역할이 헷갈린다면 내가 만약 '어떤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라면?'이라고 가정해서 생각해보면 쉽다. 특정 제품을 맡았을 때 내가 이 제품의 사장이라고 가정하고 모든 상황이나 이슈를 생각해보자. PO라는 역할에 대한 혼란이 생각보다 쉽게 해소된다.
지금까지 공유한 위 사례들과 이 외 많은 경험을 통해 나는 PO의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고 업무를 할 수 있었다. 역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니 업무도 전보다 훨씬 수월하고 방향성 잡는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때때로 제품의 방향성을 잡기가 어렵다거나 타 부서, 타제품의 PO와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고 생각될 때마다 '내가 사장이라면?'이라는 가정이 고민을 해결해주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중 PO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위 가정을 토대로 고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음은 유니콘 기업에서 제품을 성장시키며 배운 것들에 대해 나의 경험을 사례로 들며 아래 내용으로 공유하려고 한다. 원래는 하나의 글에서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질 것 같아 시리즈 형태로 쪼개었다.
그럼 다음은 전략 및 로드맵 수립은 어떤 프로세스로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전략 및 로드맵 수립
- 제품의 전략과 로드맵은 어떤 식으로 수립하는지, 이 과정에서 우선순위는 어떻게 결정하는지
커뮤니케이션
- PO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는지
성과분석
- 과제 진행 후 성과분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석 이후의 액션은 무엇인지
공유의 중요성
- 제품, 과제에 대한 공유는 누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고 및 피드백
- 프로젝트 진행 후 회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