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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06. 2022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는 거란다

들으면 들을수록 맞는 말(ft.장기하의 신곡)

  며칠 전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장기하의 신곡,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노래’인지 ‘랩’인지 살짝 애매하긴 하다. 그냥 리듬을 타며 말을 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평소 가요를 많이 듣지는 않지만 가끔 들을 때 가사에 그렇게 집중하는 편은 아니다. 가사보다는 멜로디나 분위기에 더 영향을 받는 편이다. 게다가 요즘엔 귀가 안 좋아졌는지 가사 내용 자체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데 이 곡은 저절로 가사에 집중하게 될뿐더러 내용도 잘 들린다. 발음이 정확하고 전체적으로 빠른 편이 아니라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기도 하지만 내용도 참 재미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신박한 곡이다.     


  곡의 제목이 ‘부럽지가 않아’도 아니고 ‘부럽지가 않어’라서 더 특이한 느낌도 들고, 진짜 말하는 느낌이 들어서 친근하기도 하다.      




  장기하 씨는 이 곡에 대해 부러움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고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정말 열 받지 않을까 싶었다고.           


  제일 많이 반복되는 가사는 아래와 같다. 들으면 괜히 바짝 약이 오르면서도 중독이 되는 내용이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그리고 내가 특히 주목했던 가사는 바로 이것이다.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아주 뭐 너무 부러울 테니까          


  아무 생각 없이 얼핏 들으면 말장난 같기도 한데 들으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깊은 철학이 담긴 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자랑을 하면 그것을 듣고 부러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라고 생각했는데, ‘부러우니까 자랑을 한다’라는 내용이 참으로 신선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사람들이 자랑을 하는 밑바탕에는 강한 부러움이 깔려 있는 거지.’     




  우리 아이가 시험을 잘 봤다고 자랑하는 부모의 심리에는 성적이 뛰어난 아이를 둔 부모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고, 좋은 차를 샀다고 자랑하는 사람의 심리에는 비싸고 멋진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평소에 그런 사람들을 신경 쓰고 부러워해 왔기에 나한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저절로 자랑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만약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부러워하지 않았다면 그런 것들이 나의 자랑거리가 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나도 내가 최근에 했던 자랑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일단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지난달에 브런치에 쓴 어떤 한 글의 조회 수가 이틀 만에 15만이 넘은 적이 있어서 남편에게 자랑을 한 일이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블로그에도 자랑글을 올렸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랑을 했는데 그 이유를 돌이켜 보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기 있는 브런치 작가님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내 글의 조회 수가 높게 나왔을 때 자랑을 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친한 후배와 통화를 하면서 “우리 아들은 독서 습관은 꽤 잘 잡혀 있는 것 같아.”라고 자랑을 한 일이다. 평소 책을 잘 읽는 아이를 둔 부모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깊이 박혀 있기에 이런 자랑이 술술 나온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부러우니까 자랑을 한다는 가사는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본성을 잘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이 노래의 화자처럼 모든 것이 ‘전혀’, ‘한 개도’ 부럽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한두 번 말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나는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라고 반복하는 것이 어쩌면 ‘나는 부러울 때가 정말 정말 많어’의 다른 표현은 아닌지.      


  만약 정말 부럽지가 않은 거라면 그거야말로 진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부러운 마음을 품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살이가 참 편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부러운 것들이 너무 많으니 어쩌면 좋을까? 글을 쓰면서 부러운 것들이 뭐가 있는지 잠깐 세어 보다가 너무 많아 세는 것을 포기했다. 이처럼 나는 한낱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러운 것이 많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부러운 것이 많지만 불행하다고 여기지는 않으니까. 매일매일 작은 행복과 기쁨을 발견하고 있으니까. 부러워하는 마음이 ‘질투’나 ‘시기심’으로 변질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본다.  

    

  부러워하는 마음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부러워하는 거, 그 마음과 생각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 같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이 노래가 이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니 놀랍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장기하라는 가수와 그의 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확실히 천재적인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아, 방금 또 부러움 하나가 추가되었다...).     


가수 장기하, 정말 대단하다. (사진 출처: 조이뉴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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