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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02. 2022

봄이 다 했다

우리 집 반려식물 홍콩야자, 두 번째 이야기

  약 한 달 전쯤 우리 집 홍콩야자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쓴 적이 있다. 3년째 키우고 있는 홍콩야자가 시름시름 앓고 있어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홍콩야자의 이파리의 색이 계속해서 노랗게 변하다가 툭툭 떨어져 저러다 결국엔 가지만 남고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많았다. 막연하게 통풍이 잘 안 되어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며 봄이 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글을 맺었었다(요즘 걱정되는 녀석 (brunch.co.kr)).     


  그런데 어제 그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앙증맞은 아기 손을 닮은 여린 새잎이 해말간 연둣빛 얼굴을 빼꼼 내민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파리들이 노래져 떨어지는 것만 보다가 촉촉한 새잎이 올라온 것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세히 보면 가운데 고개를 빼꼼 내민 새잎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이파리들이 노래지거나 말라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가지를 꽉 붙잡고 든든하게 붙어있을 힘이 생긴 모양이다.      




  신기한 것은 내가 한 달 전에 비해 특별히 더 해 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봄이 되면 통풍을 좀 더 잘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서 아주 눈에 띄게 통풍 시간을 늘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야자가 기운을 차린 것이 놀라웠다.


  아, 봄이 왔구나!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려도 뜬금없는 눈발만 흩뿌리며 실망을 주더니 그래도 결국 약속대로 봄이 와 주었다. 우리 집에도 소리 없이 조용히 와서는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던 친구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던 거다.


  정말 봄이 다 했다.    




  새잎이 돋아난 홍콩야자를 보며 계절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영양제를 꽂아 준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물을 더 주거나 덜 준 것도 아니고, 통풍도 아직 많이 시켜주지 못했는데도 봄은 마치 마법처럼, 잎을 떨구며 시름시름 말라가던 식물을 살려냈다.     

 

  봄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봄은 ‘깨우는’ 계절이고 ‘살리는’ 계절이다. 겨우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동식물들을 깨우고, 죽어가는 듯 보이던 대지와 자연을 살린다.


  봄이 제때 찾아와 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봄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싫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은 끔찍하고 슬픈 일이니까.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홍콩야자에게 달려가 한참을 들여다보며 흐뭇한 기분을 만끽했다. 어제 돋았던 아기 잎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들은 어제와 똑같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아주 약간이지만 더 자란 듯싶었다. 분명히 어제보다 얼굴이 또릿또릿해졌다.


  다른 가지에서도 사랑스러운 연둣빛 얼굴을 내밀기 위해 열심히 기를 쓰고 있는 새잎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직 제대로 된 형체는 없으나 분명한 새잎이었다.      

지금은 하트를 닮은 새잎. 이제 곧 귀여운 손가락을 모두 펼치게 될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숨은 그림 찾기보다 더 재미있는 ‘숨은 새잎 찾기’를 하게 생겼다. 홍콩야자 이파리들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니 손 끝에 닿는 다정하고 촉촉한 느낌에 행복해진다.

    

  ‘지금까지 잘 이겨내고 버텨줘서 정말 고마워. 봄의 햇살과 바람을 먹고 더 살도 찌고 튼튼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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