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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27. 2022

대화를 나누자

우울할 땐 대화를

  오늘 오랜만에 예전에 A대학에서 일했던 B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카톡으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할 얘기가 많아져 통화를 하게 됐다.     


    A대학을 그만둔 것이 작년 봄인데. 작년 가을에 한 번 얼굴을 본 뒤로는 코로나 때문에 실제로 만남을 가진 적이 없다. 그래도 꽤 자주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최근 두세 달 정도는 연락이 뜸했다. 그런데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기프티콘 선물과 함께 연락을 주신 것이다. 얼마나 죄송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A대학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고, B선생님은 다른 기관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시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내내 수업을 하셨다고 한다.   

    

  “제가 연락이 좀 뜸했죠. 기분이 너무 우울해서 연락을 드릴 수가 없었어요.”     


  통화를 시작하는데 오랜만에 들은 B선생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B선생님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셨는데 그중 한 마리가 작년에 고양이별로 떠나 버렸다. 그때 B선생님은 정말 힘들어하셨다. 가족 같이 사랑을 했던 고양이가 갑작스레 황망히 떠나 버렸으니 충격을 크게 받으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른 고양이 한 마리마저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나이도 많고 병 자체도 완치가 어려워 고양이도 힘들어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B선생님도 힘들어하신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몇 달 전부터 B선생님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왔다고 한다. 앉아서 수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허리에 무리가 왔다고 하셨다.




  B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나 속이 상했다. 먼저 연락을 드리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B선생님이 수업도 많으시고 해서 바쁘신가 보다 하고 연락을 안 드렸었는데 그냥 한번 연락을 드려볼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B선생님은 기분이 우울하니까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고 하셨다. 우울한 이야기를 하면 괜히 듣는 사람에게도 우울감을 전파할 것 같아서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본인이 힘든 상황에서도 이렇게 다른 사람 생각을 먼저 하시는 분이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어 그 힘든 마음을 무릅쓰고 연락을 먼저 주신 것만 봐도 그렇다.      




  “B선생님, 앞으로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으시면 절대로 혼자 계시지 말고 저한테 연락을 주세요. 이야기를 해야 우울한 마음도 나아지죠. 혼자만 끙끙대면 안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진심을 담아 B선생님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울감이 심할 때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들은 B선생님은 고맙다고 하시며 속 안에 있던 이야기들을 나한테 다 말하고 나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고 하신다.      


  “선생님, 저 목소리 완전 달라지지 않았어요? 선생님하고 이야기하고 나니 처음 통화할 때보다 훨씬 목소리가 밝아진 것을 느껴요.”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좀 가라앉아 있었던 B선생님의 목소리가 정말 예전의 명랑하고 상냥한 톤으로 바뀌어 있었다. B선생님은 다시 한번 내게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시고는 앞으로는 힘들 때 연락을 하겠다고 하셨다.




  B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나서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한 분이 계셨다. 바로 우리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셔서 공기청정기를 관리해 주시는 코디님이다. 석 달에 한 번 꼴로 오셔서 우리 집 공기청정기 필터도 갈아주시고 점검을 해 주신다.      


  코디님이 오시면 작업하시는 동안 가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분은 나보다는 꽤 연배가 있으신 분인데 그분도 몇 년 전까지는 우울증이 심해서 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고 하셨다. 몇 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오래 살던 지역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무척 외로우셨던 모양이다.


  다 성장한 자녀들은 각자 직장을 얻어 집을 떠나 직장 근처로 가서 살고 남편 분과 두 분만 사시는데 남편 분도 일 때문에 바쁘시니 코디 님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시던 분이라 가족 분들도 잠깐 그러다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우울감이 한 번 찾아오니까 정말 아무 말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의욕이 안 나고 입맛까지 잃었다고 하셨다. 정신과에 가는 건 엄두가 안 나서 그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온 가족이 다녀서 잘 아는 예전 동네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말했더니, 그 의사 선생님이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집에만 있지 마시고 밖에 나가 일을 해 보세요.”     


  그 조언을 듣고 정말 일을 시작하셨단다. 그리고 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우울증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코디라는 직업의 특성상 밖에서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감을 잊게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코디님과 B선생님의 예를 보면 우울감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대화’가 필수적인 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친한 사람이든 잘 모르는 사람이든 간에.


 코로나 때문에 만남도 힘들어지고 세상과의 단절이 생기는 요즘, 우울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직접 대면으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방법으로 대화는 나눌 수가 있다.


  나부터 먼저 안부를 전하고 따뜻한 대화를 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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