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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된다는 것

뿌리가 깊고 생명력이 강한 이야기

by 곤리 Gonli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내가 십 수년간 배운 골프보다도 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두려운 것이다. 한 발짝 깊숙이 들어가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을뿐더러 나의 민낯을 보여주는 건 아직은 부끄럽다. 시간이 흘러 봄바람이 속삭이고 나뭇잎이 손짓하고 꽃봉오리가 히죽거리는 것은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시간이 부리는 마법 따위는 너무도 쉽게 인정해 버린다.


지난 봄날 현관 앞 조그마한 화분에 심어 놓은 '파키라', '스토키' , '크루시아' 식물들이 겨울의 창문틈 찬기에 잎사귀들끼리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보여서 이들을 모두 따뜻한 거실로 옮겨 놓고서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식물을 사랑하는 나의 갸륵한 마음을 기특해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따뜻한 봄에 강인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차가운 겨울소리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무한한 도파민을 안겨다 준 것이다. 첫날은 얼었던 녀석들이 푸르스름해졌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하나씩 노랗게 시들시들해지더니 결국에는 뿌리까지 썩어 버린 것이다. 아뿔싸!, 그 푸르름은 다 어디로 갔다 말인가. 아마도 무척이나 원망의 목소리로 나를 불렀을 것이다. "제발 부탁인데 그냥 내버려 두세요. 당신은 어떤 것도 저를 도울 수가 없어요", " 불쌍히 여기지 말아 주세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자식이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을, 여정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살피고 따져보고 헤아려야 한다. 단지 나의 죄책감에 휘둘려서 따뜻한 온실에다 냅다 던져 놓아서는 안된다. 자식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또 다른 나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자식을 다정다감한 손길로 어루만져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하고픈 마음이야 간절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을 때에는 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릴 때 아버지랑 가끔씩 '장기'를 두곤 했었는데, 처음에는 계속 지는 게 짜증도 나고 싫었지만 아버지와 가까이 얼굴 맞대고 있는 게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아버지의 따스한 숨소리가 지금도 전해지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가 아버지를 이기고 나서는 후회가 되었다. 왜냐면 그날 이후로 아버지랑 마주하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난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미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내 가슴속에, 피부 속에, 손가락마디사이로 어렴풋한 메시지들이 숨겨져 있는데 모두 나의 아버지의 것들이다. 언제 어떻게 그 속에 숨어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씩 하나씩 다시 꺼내어 포장해서 오롯이 나의 것인 양 떠나보낸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뿌리가 깊고 생명력이 강한 이야기들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변화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메시지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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