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운명과도 같이 맞닥뜨리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길게 보면 그 문장은 책의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문장이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 서평 안에 그 문장을 적기도 애매하다. 몇 번을 다시 읽게 만든 문장이라 그냥 흘려보내기에도 아쉽다.
"나는 이미 지나간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근심하지 않는다."
최근 sns에서 많이 보이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 안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절대 줄거리를 알고 보지 말라기에 정말 아무 편견 없이 읽는 중인데 80페이지까지 읽었건만 어떤 내용인지 아직 감도 오지 않는 그런 책이다. 다 읽고 나면 저런 문장은 생각도 안 날정도의 책일지 몰라도 지금은 나의 머릿속에 저 문장 하나뿐이다.
어렸을 적엔 내 인생에 행운이 자주 찾아와 주길 바랬다. 그리고 조금 나이가 든 어른이 되고 나서는 불운이 자주 찾아오지 않길 바랬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크게 아팠을 때, 왜 나에게 이런 불운이 찾아왔는지 원망한 적이 있다. 뻔한 얘기 같지만 사실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그리고 아직 벌어지지도 않을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평생 아이를 케어할 수 있을까 등등의 근심 걱정은 나를 곪게 만들었다. 이미 눈앞에 닥친 불운이라면 그 후에 내가 할 일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걱정한다고 해서 불운이라는 녀석이 '아이고 걱정 그만하십시오, 전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 하고 사라질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소리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뇌에게 '자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자'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제 내 머릿속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코끼리 생각만 날 것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를 생각해보면 앞에 있는 물체랑 부딪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내 눈앞에 길은 사라지고 물체만 보인다. 그리고 결국 꽈당 하고 부딪히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불운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내가 미리부터 줄곧 생각한 걱정과 근심을 발판 삼아 눈앞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불운은 다시 걱정과 근심을 낳는다.
이미 벌어진 불운이라면 조금 가볍게 지나가 주길 하고 넘겨버리자. 마음 졸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아이의 일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