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준점

by 원준


나는 평소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는 걸 즐겨한다.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읽는 것도 싫어하지 않지만 그러다 보면 치우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에 자서전이 겹쳤다. 그 책들은 워렌 버핏, 인드라 누이였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나는 내 책을 쓸 때 하나님에 대해 솔직하게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에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처음에는 글에 나의 신앙을 넣으면 불편한 이들이 있을 것 같아 되도록 피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글 자체에 진심이 조금은 변질되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글에 나의 신앙을 솔직히 넣었고 그게 훨씬 나다웠다. 근데 오늘은 한 발 더 나아가 글 자체에 하나님을 볼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물론 정말 어려운 기준을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글 쓰는 이유는 결국에는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근데 수필을 보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수필의 클리셰가 있다.


따듯하고 감동적이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글 말이다. 나는 그 클리셰를 깨고 싶긴 하다. 무작정 위로하는 글이 아니고 무작정 감동을 유발하는 글이 안 쓰고 싶다. 물론 많은 작가분들도 그걸 깨면서도 수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깨기에는 독자분들 원하는 거 자체가 그런 클리셰일수도 있다. 자신은 위로받고 싶은데 이 글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으면 읽고도 기분만 나쁠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점이 뭐가 있을까? 에서 계속해서 잡아가야 한다고 난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새로운 기준점을 하나 잡은 것이다. 하나님이 내 글에서 보이려면 어떻게 쓸지는 도무지 감이 크게는 안 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랑을 넣으면 된다고 느낀다. 많은 신앙인들에게 물어보면 하나님을 정의하라고 하면 다양하게 말할 것이다. 자비로운, 신실한, 위대한, 무서운, 냉철한, 친밀한 등등 말이다. 여기서 답은 없다고 난 생각을 한다. 사람 각자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삶에 관여하신 지는 난 모르니 말이다. 당사자와 하나님만 알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나도 대답을 하자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것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사랑은 사라지고 누군가를 밞아서 올라갈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니 안타깝다.


이기주의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편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서 남는 것은 허무함일 뿐이다. 자신이 그렇게 꿈꿔 왔던 것을 갖는다고 해도 잠시의 기쁨이지 지속적인 기쁨을 줄 수는 없다.


내 글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지는 모르나

나는 하나님을 보이게 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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