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니거나 다녀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라고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성경 속에서 악당처럼 나온다.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고 지 잘난 맛에 살아가는 이들이다. 근데 그들에게 반전이 하나 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믿었고 그 무엇보다 율법을 잘 지켰다. 그들은 악당이 아니라 그 당시에 신앙심이 투철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 만 훌륭한 신앙인들이었다. 흔히 말하는 보여주기 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형식에 연연하며 막상 하나님의 사랑과는 상관없는 이 들였다. 무엇보다 자신들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하다고 느끼는 이들이었다. 근데 이 느낌 어색하지 않다.
왜일까?
아마 지금에도 그런 이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얘기하지만 속에서는 다른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야지 자신을 좋게 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이해가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판단한다는 게 아니라 나는 그들이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이거는 신앙이 아니라 삶에서도 그럴 것이다. 본인은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닌데 억지로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고 가면을 쓰는 이들도 있다. 왜 굳이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빈말을 잘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솔직하게 말한다.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 언제 한번 밥 한번 먹어야지 "이다. 근데 난 외국인인지 이 말을 정말 안 쓴다. 만약에 그 말을 쓴다면 난 정말 밥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연락하여 약속을 잡으려고 하다가 상대방 이런저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았다.
" 원준아 내가 요즘 과제가 밀려서 ㅠㅠ "
" 원준아 내가 자격증 준비로 ㅠㅠ "
" 원준아 내가 약속들이 많아서 다다음달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아 ㅠㅠ "
" 원준아 내가 회사의 야근이 많아져서 ㅠㅠ "
그런 이들의 공통점은 말은 저리 해놓고 차후 약속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상대는 그냥 던진 말인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차라리 솔직하게 " 나 미안하지만 약속 잡기 귀찮다 " 이게 편하다. 아니 내가 만나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왜 그리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나는 브라질 사람이 분명하다. 아무튼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자신을 꾸미려고 한다. 이게 얼마나 피곤하고 바리새인 같은 삶인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제자들이 막자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으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8장 15절~17절 -
이 말씀은 신앙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왜 그리 생각하냐고?
어린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만큼 수순하고 맑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얀 거짓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에게 아이들이 못 생겼다고 하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그러나 나도 늘 오늘의 주제처럼 나도 그런 고귀한 척을 하는 가식적인 바리새인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샌가 가면을 쓰고 착한 척하면서 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같이 살아가길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