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내가 봐도 정말 사람자체가 선하다고 하기에는 나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그 한계는 누군가를 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 그 이상은 솔직히 노력이 없으면 어렵다.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잘해주려고 하면 잘해줬지 못해 준 적은 없다. 그런데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내 뒷얘기들이 나온다.
어릴 때는 가장 어이없던 뒷얘기는 내가 왕자병이라는 소리였다. 그때 전말은 이러했다.
나는 축구훈련을 하다가 다쳐서 도수치료를 받으러 학교에서 중간에 조퇴하고 가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 친구들 말고는 거의 볼 시간이 없었다. 주말에는 엄마가 입원한 병원 가느라 더욱 그러하였다. 근데 내가 다니던 학교 친구들 말고 나와 다른 학교가 된 친구가 내가 바쁜 척하고 왕자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했다고 들었다. 나는 몹시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나는 다니던 학교에서도 수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병원을 다니고 안 가는 날에는 훈련에 참여하는데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의 말은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어린 나는 이유도 없이 날 미워한 게 힘들었다. 나는 그에게 잘해줬는데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학년은 오르고 학교가 올라가니 신박한 소리를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다니던 학교에서 비교적 축구팀하고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맙게도 새로운 친구들은 나에게 잘해주었고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였다. 그러던 중에 어떤 친구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은 나 없을 때 친구들이 나에 대한 좋은 말을 하자 어떤 친구가 짜증 내듯이 나에 대한 안 좋은 말을 했다고 하였다. 근데 참고로 그 친구는 나와 그리 친하지는 않아도 한 번씩 대화하면 좋게 이야기하던 친구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화를 많이 하지도 않았지만 가끔 해도 크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친구는 나에게 " 아마 너가 전학 오자마자 잘 지내는 게 싫었던 것 같아 "라고 하였다.
나는 그 이후에도 그런 구설수에 한 번씩 올랐다. 어릴 때 나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 몹시 답답하였다. 내가 못되게 굴었으면 이해라도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깨달은 것은 그들은 내가 더 착하게 하였어도 똑같았을 것이고 반대로 못되게 굴었어도 똑같았을 것이다.
내 글에서 결혼은 어떤 사람과 해야 하지?라는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냥이라는 단어가 뭔가 퉁명스러워 보일 수는 있지만 그냥이라는 단어만큼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은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쓴 글이지만 이 글에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왜냐하면 사랑의 정의를 나는 가장 잘 드러낸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슬프게도 사람이 반대로 미워할 때도 같은 것 같다. 그들이 날 싫어하는 이유를 대보라고 하면 아마 억지로 만들어내거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냥 그냥 내가 싫은 것이다. 그렇기에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은 나에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시도하지 않고 이러지 않았다. 아무튼 그들은 내가 좋게 대화를 꺼내도 자신은 발뺌하기 바빴다.
물론 상대가 뭔가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미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다시 그를 안 미워할 자신이 있을지는 모른다. 이번 글은 어느 정도 호불호가 나눠질 것을 나 또한 알고 있다. 이 글은 어느 정도의 일반화가 담겨있고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근데 내가 본 세상은 이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납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유 없이 날 미워하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대신 나는 이제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왜 미워하지 않느냐고? 내가 대인배이냐고? 아니다. 그저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기운과 시간이 있다면 나를 좋아해 주는 이들과 즐거운 축배를 들것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이유 없이 그냥 사랑한다.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이유 없이 구냥 미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