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아버지와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북한에서 교회를 세우고 부흥회 하는 조건으로 외국에서 2억 달러를 받는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부터가 흠칫한 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교회를 세우고 부흥회 하는데 무슨 돈을 주나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북한에 현재 현황이다. 아무튼 그 영화 내용이 궁금하다면 실제로 보길 권유한다. ( 참고로 실제사건을 포티브한 영화라고 한다 )
암튼 이 영화 속에서 예수쟁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나는 그 단어에 꽂혔다.
나는 왜 하나님을 만나서 예수쟁이가 되었는가?
나는 태어나보니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었다. 아버지 쪽에서는 목사님만 두 분이 계셨다. ( 셋째 큰 아버지는 목회를 은퇴하셨고 작은 고모부는 현재 개척교회 담임 목사님을 하고 계신다 )
뭐 그랬다. 나는 자연스럽게 모태신앙이었고 유치원도 교회 유치원을 나왔다. 그런데 신앙과는 별개였다. 나는 주일예배는커녕 추수 감사절이나 성탄절에 반 강제로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가서 예배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고 나서부터 나는 기도라는 것을 열심히 하였다. 나는 열심히 하나님을 믿을 테니 우리 엄마 데리고 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신 걸까?
우리 엄마는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엄마의 자리는 생각 이상으로 컸고 나는 그 이후에도 교통사고와 그 후유증으로 재활만 하면서 몸도 마음도 망신창이가 되었다. 근데 참 신기하였다. 이 절망스러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날 늘 부르셨다. 나는 부르시니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사역까지 하면서 주님이 날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텼다.
이러고는 좋은 일이 생겨야 하는데 난 이 이후로도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글에서 중요하지는 않다.
여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왜 나는 예수쟁이가 되어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었다. 고난과 역경이 계속되더라도 주님께서는 늘 내 옆에 계셨다.
우리는 간혹 잊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은 우리 옆에 계신다는 것이다.
언제는 있고 언제는 없고 가 아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신다.
마지막으로
광야를 지나며 라는 찬양이 있다. 이 찬양은 캄캄한 광야에서 오로지 주님만이 날 도우실수 있고 나의 친구이고 나의 빛이라는 찬양이다. 우리는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은 나의 힘으로도 안되고 누군가의 힘으로도 안된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도우실수 있다. 주변에서 예수쟁이라고 하며 좋게 생각하든 나쁘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내가 예수쟁이라는 걸 하나님만 아시면 된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은 선하시고 늘 나와 함께 하시며 무엇보다 날 사랑하심을 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