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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Aug 14. 2024

후진은 창문 내리고


남편의 주특기는 방어운전이다. 제한속도를 지키고, 도로에서 과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깜빡이만 미리 켜고,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는다면 끼어들려는 차량에게 양보도 잘한다. 그 덕분인지 몇 년 전 신호 대기 중에 뒤차가 전방주시를 소홀히 해서 추돌을 당한 적은 있어도 주행 중에 자신이 접촉 사고를 일으킨 적은 없다. 재작년까지는 말이다.     


면허를 따고 20년 가까이 무사고를 자랑하던 남편은 작년과 올해, 매년 한 건의 실수를 저질렀다. 작년에는 골목에서 후진하는데 후방 카메라가 갑자기 먹통됐다고 한다. 사이드미러만 보고 가다 비스듬히 주차되어 있던 오토바이를 못 보고 쳐서 넘어뜨렸다. 남편의 운전 인생 처음으로 상대방에게 해준 보험 수리였다.      


두 번째는 올해, 새 차를 뽑은 뒤다. 그 전 차와 달리 지금 차는 초음파 센서가 없다(대체 왜 그 기능이 빠졌는지 의문이다). 매번 후진하던 길이지만 그날은 일이 안 좋게 되려는지 시간이 촉박해서 급하게, 그리고 평소보다 좀 더 뒤로 차를 뺐다고 한다. 그 결과 전봇대에 오른쪽 후미등 부분을 박았다. 깨진 후미등과 삐뚜름하게 어긋난 차체를 보니 내 마음도 찌그러졌다. 수리 기간은 일주일, 자부담 50만 원가량이 나왔다. 전봇대는 몇 년째 그 자리에 있었는데 왜 그날따라 못 봤을까 남편은 자책했다.


운전 경력도 길고, 누가 봐도 나보다 운전을 훨씬 잘하는 사람이지만 남편이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다. 후진할 때는 창문을 내리고 하라는 것이다. 전에도 한번 말한 것 같은데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모양이다. “너 창문 내리고 했어?” “... 아니.” 앞으로는 꼭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후진하라고 했다. 남편도 그게 맞다는 걸 알면서 여태 그렇게 안 해도 별일 없었기에 잠시 무뎌진 것 같다며 반성했다.      


보행자로만 살 때는 몰랐다. 가끔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후진하는 차나 구조물을 박은 차를 보면 이해가 안 됐다. ‘아니, 차에 있는데 밖이 왜 안 보여? 창문도 있고 거울도 있는데 뒤를 잘 보면서 후진해야지’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막상 운전자가 되니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후진할 때는 사이드미러, 후방카메라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과 옆도 잘 살펴야 한다. 꼼꼼히 봤어도 잠깐 사이 갑자기 사람이 오거나 오토바이, 자동차 등이 의외의 장소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눈으로만 확인하는 것보다 창문을 내려 소리까지 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창문으로 고개를 쑥 내밀어서 밖을 보라는 뜻은 아니다. 그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다만 사람 소리나 차 소리를 들으면 귀와 눈이 같이 반응하게 되니 조금은 낫다는 의미다. 창문을 내리는 게 번거로울 수 있지만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드느니 잠깐의 수고를 하는 게 백번 천 번 낫다.


남편은 “이제 너한테 내가 뭐라고 못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연이은 실수에 풀이 죽은 남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사람 안 다친 게 어디냐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아울러 내년 보험료가 인상될 테니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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