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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뱅크 May 31. 2024

셋방을 빼서 위스키를 사 마셨습니다

금융생활 가이드


영화 <소공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취향을 고수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미소(이솜)는 고된 하루의 스트레스를 담배와 위스키로 해소하는데요. 담배와 위스키 가격이 오르면서 자기 벌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합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급여를 더 받을 수 있는 일을 찾거나, 씀씀이를 줄일 텐데요. 미소는 다릅니다. 기호식품을 계속 소비하기 위해서 셋방을 빼는 인물이죠. 

 


친구 집을 전전하는 가사도우미 


미소는 믿을 구석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밴드 활동을 함께한 친구들 집에서 며칠씩 신세를 지면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어릴 때 아무 조건 없이 서로 재워주고 먹여주던 우정을 떠올린 것이죠.


물론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친구 집에서 자려는 건 아닙니다.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만큼, 집안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요. 그러나 직장인이 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친구들은 미소를 예전처럼 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친구는 부담스러운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죠.



20, 30대가 위스키를 마시는 이유는


부동산 가치가 폭등하면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스몰 럭셔리’에서 만족감을 얻는 청년이 늘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집을 사기는 어려우니 위스키를 홀짝이거나, 고급 디저트를 사 먹으며 ‘작은 사치’를 누리는 것이죠. 미소는 20, 30대의 이러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캐릭터인데요. 


실제 미소가 즐겼던 위스키는 스몰 럭셔리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최근에 소비량이 크게 늘었어요.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수입량은 3만 톤(t)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전년 대비 13%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젊은 세대가 위스키를 즐기는 이유로는 ‘스몰 럭셔리’ 외에도 ‘즐기는 술 문화’의 확산이 꼽히는데요. 젊은 세대 사이에서 과거의 기성세대처럼 폭탄주로 만취하는 대신 한두 잔만 기분 좋게 마시는 음주 문화가 퍼지는 거예요. 보관이 용이하고 조금씩 나눠 마시기 좋아서, 위스키의 인기가 ‘즐기는 술 문화’와 함께 높아졌죠. 위스키를 마시면 상대적으로 폭음을 덜 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맥(소주+맥주)을 마시는 것보다 합리적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음주 트렌드를 소개하며 "MZ세대 소비자는 심야 모임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음주를 거부하고 술을 즐길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라고 소개한 바 있는데요. 또 위스키에 탄산수, 토닉워터 등을 섞어 ‘재밌고’ ‘맛있게’ 마시는 하이볼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영화적 과장일까 N포세대의 초상일까


일부 관객은 미소가 자기 삶에 너무 무책임하다고 비판합니다. 아마 일자리를 조금만 더 알아봤다면 위스키를 계속 마실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조건의 집에서 살 수도 있겠죠. 건강하고 젊으니까요. 다만, 양극화 심화에 탄생한 ‘N포세대’가 자산 축적을 포기하고 작은 사치에서나마 위로를 얻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긴 합니다. 해결책을 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요.



글 박창영
매일경제 기자. 문화부를 비롯해 컨슈머마켓부, 사회부, 산업부, 증권부 등을 거쳤다. 주말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 리뷰를 연재한다. 저서로는 ‘씨네프레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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