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생활 가이드
월 스트리트의 늑대로 불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조던 벨포트. 스트래튼 오크몬트라는 증권사의 오너인데요. 슈퍼카를 몰고, 매일 초호화 파티를 여는 파티광이기도 합니다. 월가에 입성한 금융인이 한 번쯤 꿈꾸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4)는 월가에서 최고의 브로커가 된 벨포트가 몰락의 길을 걷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벨포트는 자격증도 없는 생초보 중개인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높은 실적을 올리며 월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벌인 사기 행각이 드러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FBI가 벨포트를 체포합니다. 그가 거짓된 방법으로 투자자를 속여 왔다고 판단한 것이죠.
벨포트가 어떤 사기를 쳤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판매한 자산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요. 그는 장외 시장에서 페니스톡(Penny stock)이라고 불리는 주식을 팔았습니다. 페니스톡은 한 주의 가격이 1달러가 안 되는 저가 주식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동전주’라고 부르죠.
벨포트는 화려한 언변을 이용해 페니스톡을 팔았는데요. 이로써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렸죠. 스트래튼 오크몬트를 설립하고 펌프앤덤프(pump and dump)라는 조직적인 사기 행위를 벌인 것입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페니스톡에 투자한 뒤,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정보를 조작합니다. 페니스톡의 가치를 ‘펌프질'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페니스톡의 가치가 오르면? 이것을 다른 투자자에게 팔아넘깁니다. 이른바 ‘덤프'를 통해 막대한 차익을 얻는 건데요.
벨포트는 사기 행위로 보이지 않도록 처음부터 신중하게 접근했습니다. 페니스톡을 팔 때 우량주를 함께 판매하면서 손실률을 상쇄할 수 있게 한 것이죠. 하지만 결국 사기 행각은 들통났는데요. 이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벨포트가 의심을 받게 된 결정적 사건은 따로 있었는데요. IPO(기업공개)에 도전한 것입니다. 사기 행각의 스케일을 키워 한탕 잡으려고 한 것이죠.
스트래튼 오크몬트는 신발 기업 스티브 매든의 IPO를 주관하는데요. 1990년대에 통굽 신발을 선보여 여성 고객을 사로잡은 기업입니다. 경쟁력만 보면 IPO를 해도 무리가 없는 회사였죠. 하지만 벨포트는 스티브 매든의 IPO를 대신하고 받는 수수료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요.
자기 동업자와 차명 계좌를 만들어 스티브 매든의 주식을 80% 넘게 보유합니다. 이렇게 스티브 매든 주가에 통제력을 가진 후, ‘펌프앤덤프'를 통해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각하죠. 이것이 바로 SEC에서 벨포트가 증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이유입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하다고 했던가요.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투자 시장을 교란하는 일은 종종 일어나는데요.
특히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국내에서 주로 거래되는 암호화폐 10개 중 9개에서 ‘펌프앤덤프'로 추정되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죠.
물론 시세가 빠르게 오르는 모든 자산이 사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승세에 올라타려면 그 전에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야 합니다. 혹시 뒤에서 어떤 늑대가 펌프질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글 박창영
매일경제 기자. 문화부를 비롯해 컨슈머마켓부, 사회부, 산업부, 증권부 등을 거쳤다. 주말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 리뷰를 연재한다. 저서로는 ‘씨네프레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