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이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까?

by 카카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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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밀당’은 유치한 감정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감정을 지키고, 상대와의 신뢰를 쌓기 위한 합리적인 탐색 과정입니다. 때로는 거리를 두거나, 진심을 행동으로 드러냄으로써 서로의 가치를 평가하고, 관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자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자산의 가치를 보호하는 전략과 닮아 있습니다.


연애는 투자와 닮았습니다. 상대의 마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나의 시간과 감정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써야 하니까요. "좋아해"라는 말 한마디만 믿고 섣불리 마음을 전부 줬다가 상처받았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밀당'이라는 설명서를 펼쳐 듭니다. 밀당은 유치한 감정 게임이 아니라, 상대라는 투자처의 가치를 평가하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여 '상호 신뢰'라는 안전자산을 확보하려는 지극히 합리적인 과정입니다.



가끔 튕겨도 괜찮은 이유


흔히 연락을 일부러 늦게 하거나 약속을 거절하는 '밀기'는 부정적으로 비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이는 나라는 존재의 희소성을 높여,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는지 확인하는 일종의 테스트입니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 나가고 메시지에 1초 만에 답하는 무한 공급의 상태는 나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상대는 나를 '언제든 원할 때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관계를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죠.


이때 "이번 주말은 선약이 있어"라며 정중히 거절하는 것은, 상대가 나와의 만남을 위해 얼마의 기회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만약 상대가 "아, 그럼 어쩔 수 없지"라며 쉽게 포기한다면, 그는 당신과의 만남에 큰 노력을 들일 마음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럼 다음 주는 어때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라며 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만큼 당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결국 '밀기'는 내 소중한 시간과 감정을 나눌 만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현명한 과정입니다.



내 마음의 가치를 증명하는 법


‘당기기’는 나의 진심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먼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상대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단순히 잘 보이려는 행동이 아닙니다. 나의 "사랑해"라는 말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비용'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죠.


상대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병원 꼭 가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약과 죽을 사서 집 앞까지 찾아가는 행동은 다릅니다. 이 행동에는 나의 시간, 노력, 그리고 잠재적 손실(다음 날의 컨디션 저하)이라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대가 감동하는 포인트는 약의 가격이 아니라, 당신이 기꺼이 지불한 이 '비용'입니다. "나를 위해 이 정도의 수고를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마음은 진짜구나"라는 확신을 주게 되죠. 진심의 무게는 말의 화려함이 아니라, 당신이 기꺼이 포기한 것들의 합으로 증명됩니다.



밀당, 그다음 단계는?


이처럼 '밀기'와 '당기기'는 연애 초반, 불확실한 상황에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매우 합리적인 탐색 과정입니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고 해서 이 모든 긴장감이 사라져야 하는 걸까요? 이 밀당이 더 성숙한 형태로 진화해야, 관계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토머스 셸링이 말한 '억지력'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연애에서 억지력이란, '네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나는 언제든 이 관계를 떠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는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소모적인 밀당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나는 이 관계가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건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성숙한 단계의 상호작용이죠.


내가 관계에만 매몰되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나의 희소성은 사라지고 관계의 주도권은 쉽게 한쪽으로 기울어집니다. 하지만 나만의 일과 취미, 인간관계를 소중히 가꾸며 스스로의 세계를 단단하게 지켜나갈 때, 상대방 역시 당신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연애 초반의 탐색전을 넘어, 관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밀당의 원리입니다.



나를 지키는 가장 이성적인 선택


밀당의 본질은 소모적인 감정의 줄다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성적인 가치 평가에 가깝습니다.


연애 초반,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며 그의 진심을 시험하는 것은, 불확실한 투자처의 가치를 평가하는 당연한 첫 단계입니다. 관계가 깊어진 후, 나만의 세계를 지키며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또한,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현명한 리스크 관리 전략이죠.


그러니 밀당을 유치한 감정 소모라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의 모든 망설임과 저울질은 변화하는 관계의 단계마다 나라는 가장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가치를 높이려는 똑똑한 선택일 뿐입니다.



• 저자 조원경 :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공공정책대학원장으로 조선일보, 헤럴드경제 등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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