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랑에 빠지면 이성을 잃게 될까?

by 카카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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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우리는 종종 사랑 앞에서 이성을 잃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연애만 시작하면 반복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답은 우리 뇌가 사랑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뇌가 복잡한 감정 앞에서 택하는 지름길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판단을 흐리는지 알려드릴게요.


우리는 스스로를 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수십 개의 탭을 띄워 최저가를 검색하고, 0.1%의 우대 금리를 더 받기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 은행 창구를 찾는 철저함을 발휘하죠. 마트 매대 앞에서 1+1 행사를 보면 ‘단위당 가격’을 머릿속으로 계산해 냅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우리가 쌓아온 합리성이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분명 어제까지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내 인생에서 아웃이야"라고 단호하게 다짐해놓고, 연락 한 통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풀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맙니다.


왜 우리의 뇌는 수입 과자 하나를 고를 때보다 인생의 파트너를 고를 때 더 형편없는 판단력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왜 100원 단위의 배송비에는 분노하면서, 내 자존감을 깎아먹는 상대에게는 무한대의 '감정 자본'을 아낌없이 퍼주는 '역마진 투자'를 감행하는 걸까요?



한 번 좋은 사람은 영원히 좋은 사람일까?


우리 뇌는 복잡한 계산을 싫어해서, 판단의 효율을 위해 강력한 ‘기준점’을 세우는 것을 선호합니다. ‘앵커링 효과’란 처음에 접한 정보가 닻처럼 박혀 이후의 모든 판단을 그 주변으로 끌어당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중고차를 사러 갔을 때 판매자가 처음으로 '2,000만 원'이라는 가격을 제시하는 순간, 그 숫자가 닻처럼 머릿속에 박힙니다. 설령 그 차의 적정 가격이 1,500만 원이라 할지라도, 구매자의 머릿속엔 이미 2,000만 원이 기준으로 자리잡은 탓에, 1,700만 원에 협상이 끝나도 '잘 깎았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원리는 연애 시장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연애 초반, 상대방이 보여준 가장 긍정적이고 완벽한 모습은 ‘이 사람의 평균값’이라는 강력한 기준점으로 뇌리에 새겨집니다.


진짜 문제는 상대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보여줘도 '원래는 안 그런데...', '오늘 컨디션이 안 좋나?'라며 첫 기준점을 지키는 방향으로 해석해버린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객관적인 모습이 아닌 과거의 첫인상이라는 닻에 묶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내 애인이 괜찮아 보이는 진짜 이유


뇌는 절대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데 서툽니다. 대신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손쉬운 결정을 내리는 지름길을 택합니다. ‘미끼 효과’는 이러한 뇌의 특성을 이용한 대표적인 판단 오류죠.


한 잡지사가 구독 상품으로 ①온라인 이용권(59달러)과 ②인쇄 잡지 이용권(125달러)을 내놓았을 땐 대부분의 사람이 저렴한 ①번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③온라인+인쇄 통합 이용권(125달러)이라는 ‘미끼’를 추가하자,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졌습니다.


②번 인쇄 잡지라는 명백히 더 안 좋은 옵션이 생기자, 같은 가격에 온라인까지 이용할 수 있는 ③번 통합 이용권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③번을 선택했습니다.


연애에서도 이런 오류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뇌가 찾아낸 엉뚱한 ‘미끼’들과의 비교 때문에 괜찮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애인이 좀 무책임하긴 해도, 대놓고 어장관리하는 A보다는 진심이지", "성격이 까칠하긴 하지만, 허풍쟁이 B에 비하면 솔직한 편이야." 이처럼 뇌는 우리가 선택할 리 없는 최악의 선택지들을 주변에 배치합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 지금의 선택이 ‘최선’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잘못된 관계에 안주하게 됩니다.



집착은 정말 사랑의 표현일까?


우리의 뇌는 모순적이거나 불편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종종 정보를 받아들이는 틀을 바꾸어, 불편한 현실을 자신이 받아들이기 쉬운 방향으로 왜곡합니다. 이를 ‘프레이밍 효과’라고 합니다.


똑같은 수술의 성공률을 ‘생존율 90%’라고 설명할 때와 ‘사망률 10%’라고 설명할 때, 환자들이 느끼는 안정감은 완전히 다릅니다. 내용물은 같지만, 어떤 틀에 담아 보여주느냐에 따라 우리의 선택과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연애에서 ‘사랑’이라는 틀은 가장 강력한 긍정 필터로 작동합니다. 이 필터가 씌워지는 순간, 상대의 명백한 단점들은 그럴듯한 장점으로 둔갑합니다. 숨 막히는 집착은 ‘나를 향한 뜨거운 관심’으로, 상의 없는 독단적인 결정은 ‘믿음직한 추진력’으로, 심지어 상처 주는 말 습관마저 ‘거짓말 못하는 순수한 성격’으로 포장됩니다. 뇌는 ‘사랑’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관계의 모순과 고통을 회피하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이 아닌, 뇌가 만들어낸 긍정적인 환상에 갇히게 되는 오류를 범합니다.



어제의 다정함으로 한 달의 상처를 잊었다면


뇌는 기본적으로 인내심이 부족합니다. 먼 미래의 크고 안정적인 보상보다, 당장 눈앞의 작지만 즉각적인 보상을 훨씬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현재 편향’이라고 합니다.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 오늘 밤의 치킨을 참는 것보다, 일단 먹고 보는 즐거움을 택하는 것이 더 쉬운 이유입니다.


이 관계가 결국 나에게 상처만 줄 것을 알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장 오늘 밤의 외로움을 달래줄 연락 한 통, 그 작은 보상이 미래의 고통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가용성 휴리스틱’이 더해지면 오류는 더욱 증폭됩니다. 뇌는 모든 과거 데이터를 공평하게 분석하는 대신, 가장 최근에 있었거나 가장 강렬해서 쉽게 떠오르는 기억을 바탕으로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달 내내 이어진 무관심과 상처는 쉽게 잊히지만, 바로 어제 그가 보여준 아주 작은 친절이나 이벤트는 머릿속에서 계속 맴돕니다. 뇌는 이 생생한 '최신 정보'를 관계의 전체 모습으로 착각하고, "그래도 어제는 좋았잖아"라며 모든 부정적인 데이터를 덮어버리는 판단 오류를 일으킵니다.



차가운 머리가 아닌, 깨어있는 머리로


그렇다면 이 모든 오류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이성적으로, 차갑고 계산적으로만 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까지 이성적일 수는 없습니다. 감정과 판단의 영역을 분리해서 보자는 제안입니다.


상대를 향한 설렘과 끌림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고, 그 감정 자체는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뇌가 그 감정을 근거로 관계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편향된 판단을 택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과 마트에서 샴푸를 고르는 일. 뇌는 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어떤 결정이든 뇌는 깊이 따지는 대신, 가장 빠르고 익숙한 방식으로 결론을 내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정을 끄는 스위치가 아닙니다. 다만 가끔은, 내 뇌가 지금 어떤 함정을 파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눈 하나면 충분합니다. 설레는 감정은 온전히 느끼되, 그 감정이 판단을 대신하게 두지 않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저자 조원경 :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공공정책대학원장으로 조선일보, 헤럴드경제 등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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