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뚫고 간 진심,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의 기록

18편

by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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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품이라는 틀을 깨고 '해결책'을 선물한 영업 사원의 단상

오늘처럼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 유독 마음 한구석이 일렁이며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 영업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그래서 가장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의 납품 사례입니다.




장대비 속에 갇힌 거북이, 연세대학교 지하를 헤매다

그날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장대비가 쏟아지던 여름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 때문에 운전대는 마치 족쇄처럼 무거웠고, 차는 도로 위에서 거북이처럼 아주 천천히 기어갈 수밖에 없었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연세대학교.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미로처럼 얽힌 복잡한 지하 주차장과 수많은 건물 속에서 저는 한참을 헤매야 했습니다.

겨우 차를 세우고 연구실로 향하는 길, 비에 젖어 미끄러운 바닥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디디며 생각했습니다. '이 비를 뚫고 찾아온 내 진심이 과연 닿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시작은 '콜드콜'이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회사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우리를 알리고, 정성스레 제안 메일을 보냈던 시간들. 그 간절함이 닿아 성사된 첫 미팅이었기에, 쏟아지는 비조차 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250도의 뜨거운 열기가 필요합니다"

그곳은 인간의 장기를 모사하는 오가노이드를 연구하는 전문 기업이었습니다.

상담이 깊어갈 무렵, 담당자님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제안을 하나 건넸습니다.

기존 제품의 성능을 뛰어넘는, 조금 더 특별한 장비를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죠.


일반적인 생물학 실험은 100도 내외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250도 이상의 극한 환경에서의 테스트가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성품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였죠. 저는 그 자리에서 섣부른 확답을 드리는 대신,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가슴에 담아 돌아왔습니다.


회사로 돌아와 부대표님과 머리를 맞대고 심도 깊은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온도는 어떻게 올릴 것인지, 크기와 내구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의 부담을 덜어줄 합리적인 가격은 얼마인지.

우리는 밤낮없이 고민하며 그들만을 위한 맞춤형 솔루션을 설계했습니다.




기성품이 아닌 '진심'을 납품하던 날

제안서를 보내고 기다림의 시간 2주. "제품을 구매하겠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한 달이라는 제작 기간 동안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단순히 장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번 납품이 제게 유독 소중한 이유는, 기성품을 파는 '판매원'이 아닌 고객의 환경에 맞춰 변화하는 '파트너'로서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입니다.

차분하게 요구사항을 정리해주셨던 담당자님의 인상도 깊게 남았습니다.

덕분에 영업이란 단순히 고객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충을 깊이 이해하고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임을 배웠습니다.




장비도, 마음도 '개인화'되어야 하는 시대

세상은 점점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실험 장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연구실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듯, 이제 장비도 그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기성 제품의 틀에 갇히지 않으려 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커스텀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현장으로 향합니다.

비록 검증과 완성까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결실은 250도보다 더 뜨거운 만족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람 부는 토요일 오전, 여러분의 일터는 어떤 온도로 끓고 있나요?

혹시 정해진 틀 안에서만 답을 찾고 계시지는 않나요?

때로는 빗속을 뚫고 달려가는 무모함과, 기존의 한계를 깨트리는 도전이 상상하지 못한 멋진 결실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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