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뮤직비디오에서였다. 배우 이민기가 출연한 뮤직비디오였는데 그 뮤직비디오에서 이민기가 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왔고 책 표지가 나왔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제목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을 검색했다. 한 블로거가 이 책의 한 구절을 올려놨는데 그 문장을 읽고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형서점에 이 책을 사러 갔는데 단 1권 남은 것을 어떤 젊은 남자가 사갔다고 했다. 호시노 미치오 책을 사러 갔을 때도 그런 일이 발생했던지라 그런가 보다...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책 제목 잊어버릴까봐 어딘가에 적어두긴 했지만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깊고 깊은 존 버거'라고 외치며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글로 꽉 차 있었다. 존 버거를 사진작가로만 생각했던지라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여러 권의 책을 낸 미술 비평가이며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인도에 가져갈 딱 한 권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난 이 책을 고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읽고 나서 그만큼 좋아하게 된 책이다. 책장을 덮으며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책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존 버거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표지도 아름다운 책이다. (사진에는 마늘껍질이 바람에 날려 올라가는 바람에 저렇게 찍혔지만. 마늘껍질이 꽃잎처럼 느껴져서 나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던지라 그냥 촬영했다.)
벌거벗은 채 태어난 내 심장은
자장가 속에 감싸였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 심장은
시를 옷처럼 입었네.
나는 내가 읽었던 시들을
셔츠를 입고 다니듯
등에 지고 다닌다네.
그렇게 나는 반세기를 살았네,
우리가 말없이 만났을 때까지.
의자 등받이에 놓여 있는 내 셔츠를 통해,
얼마나 긴 시간 마음을 닦으며
당신을 기다려 왔는지를
오늘 밤
나는 깨닫는다네. (43쪽)
장차 다가올 나 자신의 죽음을 편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어떤 한 장소에 대한 이미지이다. 당신의 뼈와 내 뼈가 함께 묻히고 내버려져, 이윽고는 모습을 드러낸 곳. 뼈들은 거기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당신 가슴뼈 하나가 내 머리뼈에 기대어 있고, 내 왼손 손바닥 뼈 하나는 당신의 골반 안에 놓여 있다. (나의 부러진 가슴뼈들을 당신의 가슴이 한 송이 꽃처럼 마주하고 있다.) 숱한 발뼈들은 마치 자갈처럼 흩뿌려져 있다.
겨우 인산칼슘일 뿐인 뼈에 관한 것임에도, 우리 둘이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이 이미지가 내 마음을 평화로 채운다. 약간 기이하긴 해도 그것은 사실이다. 당신과 함께하는, 인산칼슘만으로도 충분한 한 장소를 나는 그릴 수 있다. (126쪽)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김우룡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