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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15. 2016

일루셔니스트

늙은 마술사의 마지막 마술

마술사는 환상을 파는 존재이다.


영화 일루셔니스트

여기 한 마술사가 있다. 그는 백발의 늙은 마술사다.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마술을 더는 즐거워하지 않고, 신기하게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것이 눈속임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어른은 물론이고 아직은 세상을 잘 모르는, 그래서 그 마술이 눈속임이라는 사실도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 조차 그의 마술을 지겨워 한다. 너무 많이 봐온, 익숙해서 낡은 것이 되어버린 그의 마술은 더는 마술이 아니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늙은 마술사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거나 비둘기를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마술 뿐이다. 그는 도시를 떠나, 섬마을을 찾아 마술 공연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앨리스라는 소녀를 만난다.


영화 일루셔니스트

앨리스는 마술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백발의 마술사를 무작정 따라온다. 선술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의 노동에 지쳐 있던 앨리스에게 늙은 마술사의 공연은 작은 휴식이고 위로였다. 마술사는 앨리스의 낡은 신발을 보고 새 신발을 선물해주고, 예쁜 외투도 사준다. 그것은 그녀에게 어느날 찾아온 선물과도 같았다. 앨리스는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뭔가 다른 미래를, 뭔가 환상적인 다른 세상을 마술사가 보여줄 것이라고. 그래서 마술사를 따라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술사와 앨리스는 한 호텔에 머무르며 '가족'이 된다. 의지할 데 없는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지만, 이 관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 늙은 마술사는 소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소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작은 소시지 한 봉지도 겨우 구입할 정도로 먹고 사는 일은 곤궁했다. 생계를 위해 마술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뭔가 선물해주고 싶어서 그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다. 그건 마술을 통해 물건을 광고하는 일이었다. 앨리스는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마술사를 찾아 나섰다가, 한 가게에서 물건을 광고하기 위해 마술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실망하게 된다.
 
거리에서 앨리스가 어떤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는 마술사는 앨리스를 떠난다. 마술을 위해 데리고 다니던 토끼도 놓아준다. 앨리스는 마술사가 자신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메시지(세상에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를 보고 슬픈 표정으로 호텔을 나선다.


영화 일루셔니스트

앨리스는 결국 '마술'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늙은 마술사를 떠난다. 마술사도 앨리스가 자신에게서 어떠한 환상을 보기를 원했다는 것을 깨닫고 앨리스를 놓아준다. 마술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은 마술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마술사가 보여주는 마술보다도 앨리스가 자살을 결심한 누군가의 방문을 노크해 따뜻한 수프 한 그릇으로 그를 위로해주고, 마술 외에 다른 어떤 일도 해보지 않은 마술사가 앨리스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다니다 실수를 잔뜩 저지르고 잔뜩 지쳐 돌아왔을 때 앨리스가 그에게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을 내어놓아 그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 - 그 소박하지만 따뜻한 저녁의 풍경이 더 마술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마술은 아쉽게도 마술사에게도, 앨리스에게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마술이 눈속임이라서라기 보다는, 그런 환상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너무나 빨리 와버려서인지도 모른다. 앨리스에게도, 늙은 마술사에게도 '환상'은 필요했다. 그것이 잠시 잠깐의 눈속임이라 할지라도.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랑 받는 존재라는 환상. 그런 환상이 인생에는 필요한 법이다. 누구나 조금쯤 외롭고, 누구나 조금은 나약한 - 그런 존재이니까. 그게 인간이니까. 앨리스가 마술사를 떠난 것도, 마술사가 앨리스를 떠난 것도 더는 상대방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고, 상대방이 나를 원하지도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두 사람의 환상이 마술처럼 너무나 빨리 깨어져 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이 마술은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환상이 없는 시대일수록, '환상'은 필요하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사는 일은 꿈꾸는 일의 연속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꿈꾸기를, 꿈꾸는 일을 금지 당해왔다.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워지면 질수록 꿈은 버려야 하는 것이 되어갔다. 먹고 사는 일의 우위에 꿈꾸는 일이 있을 수는 없었다. 마음껏 꿈꿀 수 없는 시대가 와버린 것이다.


마술사와 앨리스가 함께 아름다운 가족을 이루는 꿈을 꾸었다면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꿈꾸는 일만으론 살아갈 수 없지만, 꿈꾸는 일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낼 힘을 얻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이다.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꿈꾸는 일은 사람의 심장을 뛰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이 꿈꾸던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무작정 행복해지기도 한다. 꿈은 사람을 꿈틀거리게 만들고, 꿈틀거리므로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든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미래를 그렸다면, 함께 그런 꿈을 꾸었다면 두 사람은 어쩌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두 사람에게 꿈은 꿈일 뿐, 현실은 될 수 없었다. 마술이 잠깐의 눈속임에 불과하듯. 언제나 환상은 너무 빨리 깨어지고, 짧은 만큼 아쉽다. 마술의 순간이 그토록 아름답고 놀라울 수 있는 것도 그 찰나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작은 환상이 짧은 만큼 달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구나 그 환상에 기대어, 또는 언젠가 한 번은 찾아올 그 찰나의 멋진 순간, 마술 같은 만남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쉽게 깨어질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언제나 내일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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