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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15. 2016

마더

모성애가 광기라는 옷을 입을 때

영화 마더


영화는 갈대밭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저 아줌마가 왜 갈대밭에서 미친 듯 춤을 추고 있는가"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뽀글뽀글 파마한 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줌마의 춤은 춤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잊으려는 듯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고 영화는 그 몸부림에 대한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야매로 침도 좀 놔주고, 중국산 장뇌삼을 국산이라 속이며 팔아먹고 살지만 - 그런 그녀에게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이 한명 있다. 어렵게 낳은 아들은 그러나 좀 모자란다.
 
 
시작은 아들의 살인 누명을 벗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 아들의 누명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참담한 진실 앞에 그녀는 절규한다. "바보"라는 말에 빡 돌곤 했던 아들은 사건 당일, 자신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여자애를 향해 돌을 집어 던졌고, 여자 아이는 그 돌에 맞아 죽었다.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던 어머니는 그 순간 미친다. "잘못 보신 걸 거예요." 라고 외쳐보지만,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주장하는 고물상 할아버지를 그녀는 살해하고, 그 집에 불을 지르곤 도망친다.


 
사실 죽은 여학생의 핸드폰에 그 할아버지의 사진이 있었던 걸로 봐선 그 할아버지가 죽은 여학생과 아주 관계가 없었다고 보기도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째서 그 핸드폰에 그 할아버지의 사진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영화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폐가에서 그 여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죽은 여학생의 별명이 쌀떡순이었고, 몸을 팔아 먹고 살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 할아버지 역시 그 여학생과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여학생은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한 남자의 얼굴을 모두 핸드폰으로 찍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웠던 할아버지가 그 여학생을 죽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도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였던데다, 사건을 재연하는 장면을 구경하기도 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범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그리 틀리진 않은 것 같다.


영화 마더

나는 도준이 살인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목격자가 있는데다가, 도준에게 잠재적 살인욕구가 없었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도준이 죽이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그의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


영화 마더

그가 5살 때, 남편의 죽음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농약을 탄 바카스를 먹였고 - 그는 죽지 않고 살았으나 바보가 됐다.
 
여자애들을 쫓아다니면서 "나랑 술 한잔 할래"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도준은 한 생명으로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 받지 못했던 과거가 있었고 늘 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랬기에 그날 자신에게 바보라고 말한 그 여학생에게 돌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도준은 여학생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먼저 돌을 맞았다. 얼굴 쪽에 맞았는데 - 나는 그 돌을 던진 것이 여학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보통의 여학생이 무거운 돌덩이를 자신보다 키가 큰 남자의 얼굴을 향해 던지기는 쉽지 않다. 그 현장에 할아버지가 있었을 것이다. 도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였다면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도준을 자극해 그 여학생을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도준이 그 여학생을 죽인 것은 사실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 그 할아버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던 도준의 어머니는 그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믿는다. 내내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던 그의 어머니가 어째서 그 말을 한치의 의심없이 믿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영화 마더

도준의 친구가 "아무도 믿지 마"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그녀 역시 아들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이 바보라는 이유로 결백을 주장하던 그의 어머니는 또 똑같은 이유로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준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로만 보여졌지만, 사실은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다.


어쩌면 그녀가 아들을 사랑해서 하는 행동처럼 보였던 것도 과거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 했고, 그에 실패해 아들을 바보로 만든 것에 대한, 과거 자신이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데 대한 죄책감이나 죄의식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런 과거를 잊고 싶어하지만, 아들은 기억해내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효도 관광 버스 위에서 자신의 허벅지에 침을 놓고 춤을 춘다. 아들이 살인자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아 그 할아버지를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지른 자신을 잊기 위해서.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은 사랑일 수도 있지만 광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면서 했다.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가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광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그것은 폭력일 수도 있다.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던 어머니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일 수도 있는 고물상 할아버지를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지른 것이 이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도준이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에게 고물상 근처에서 주웠다며 어머니의 침통(鍼筒)을 건네며, 이런 걸 흘리고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을 때는 약간 섬뜩하기도 했다. 도준의 어머니는 다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진범이 잡혔다며 부모님도 없는 다운증후군 환자인 남학생을 잡아놓은 경찰을 보고서도 진범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있느냐고 물었던 것도... 그래서였을 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있었다면, 자신의 아들이 억울하게 감방에 가 있는데 가만히 있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그 순간, 그녀가 터뜨렸던 울음은 안도의 울음과 미안함이 반쯤 섞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마더

마지막 장면에서의 도준의 얼굴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정말 도준은 바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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