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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25. 2016

몬스터

인간은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감독 황인호

출연 이민기, 김고은, 김뢰하, 김부선, 남경읍, 안서현, 김보라


나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
내가 죽일 수 없는 사람."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을 괴물처럼 대하면 그 사람은 정말 괴물이 된다'는. 뭐 그런 문장이었는데 (어디서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범죄 심리학 책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 문장이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범죄자가 성장 환경이나 성장 과정 도중에 받는 여러 영향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다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특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조성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늘 범죄자의 발생 원인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은 사실 경계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특정 환경이 어떤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와 관련된 실제 사례로 범죄자의 인상에 관한 부분이 있다.

험상궂게 생겼거나, 눈매가 날카롭고 찢어진 사람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사람은 성장 환경에서 무서운 인상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듣게 될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높다는 것.


그래서 이러한 이유로 타인으로부터 기피의 대상이 되거나 외모로 인해 어떤 편견을 갖고 이들을 대하는 이들이 많아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재범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범죄자를 대상으로 성형 수술을 실시했는데, (날카롭게 찢어진 눈꼬리를 순하게 보이도록 교정) 실제로 재범률이 떨어졌다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한 심리학 책의 '범죄자의 갱생'에 관한 부분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물론 이 역시 통계적으로 그랬다는 것이라서 이를 일반화시켜 생각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는 일로 경계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범죄 심리학적으로는 관심있게 지켜볼 현상이 아닌가 싶다.


영화 몬스터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태수는 몬스터다. 그는 남의 집 대문 앞에 버려진 아이다. 다행히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지만 이 가족에게도 문제가 많았다.


이 영화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온몸에 멍이 든 형을 보며  어린 태수가 '내가 죽여줄까?'라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형은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태수는 '그라목손'과 도끼를 이용해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리곤 태연히 돌아와 형에게 '놀아달라'고 말한다.


어린아이의 이 천진난만한 '놀아달라'는 말은 태수를 한순간에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버지를 살해한 태수는 이 가족에게 버려지게 된다. 날 때부터 버려진 아이는 이렇게 두 번 버려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몬스터가 된 태수는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게 된다.


태수의 가족들은 태수를 필요할 때만 이용한다. 가족의 사랑이 늘 그리웠던 태수는 알면서도 늘 속아주며 그 자리에 동석한다.


영화 몬스터

외삼촌으로부터 자신이 폭행한 여직원에게 돈 3억원이 든 돈가방을 건네주고 문제의 영상이 찍힌 핸드폰을 받아오라고 지시 받은 태수의 형은 중간에 그 돈을 가로챈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태수를 찾아가 문제의 영상이 담긴 핸드폰을 받아다 달라고 부탁한다.


영화 몬스터

문제의 영상이 담겨 있는 핸드폰을 여성을 찾아가 달라고 말해보지만 그녀 역시 집세도 제때 내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던 상태로 3억원을 받아낼 수 있는 영상이 담긴 핸드폰을 순순히 건네줄리 없었다. 태수는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의 어린 동생을 살해하려다 생각을 바꿔 아이에게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영화 예고편에도 나왔던 말을 한다.

"나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 내가 죽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아이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태수는 아이를 뒤쫓는다.
 

영화 몬스터

아이가 만난 사람은 여동생과 단둘이 살고 있는 복순이었다. 복순은 정신지체 장애 환자로 장터에 나가 채소를 팔아 먹고 산다. 여동생이라면 끔찍한 복순은 여동생이 자신들을 찾아온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가 태수에게 목이 졸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복순은 태수를 물리치고 의식을 잃은 동생을 들쳐업고 잠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찾으러 나갔다 온 사이 동생이 사라지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경찰이 정신지체 환자인 그녀의 말을 믿어줄리 없었다.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로 치부하고. 복순은 어느날 꾼 꿈에 동생이 나타나 죽었다고 말하자,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아이로부터 아이의 언니 또한 태수로부터 살해 당했음을 듣게 된다. 아이와 정이 든 복순은 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태수를 찾아 죽이려다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영화 몬스터

태수는 도자기를 빚어 판매하는데,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불가마에 태워 그 뼛가루를 넣어 도자기를 빚는다. 그리고 이를 팔아 돈을 번다. 그리고 그 돈을 자신의 가족들에게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녀의 양어머니는 돈 밖에 모르는 속물로 태수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자신이 어머니의 돈에 손을 댔다고 오해해 투견들이 있는 개 사육장에 자신을 집어 넣은 사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족들로부터 학대 받으면서도 그러한 가족이라도 곁에 두고 싶어했던, 그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어했고 소속되기를 원했던 태수와(이는 태수가 영화 속에서 가족들에게 '나도 가족이 맞지요?'라고 확인하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태수를 호적에서 파 버렸음에도 필요할 때만 이용해 먹었던 태수의 가족들. 누가 더 괴물일까? 태수의 가족들은 태수를 두려워 하고, 태수는 그런 가족들에게 증오를 느낀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아이는 무언가가 결여된 채로 자란다. 그의 가족들은 그런 그를 괴물로 대한다. 그리고 그는 정말 괴물이 되고 만다.

세상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고, 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었던 건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뿐이었다. 복순은 태수로부터 아이를 구하고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태수는 괴물이었지만, 그보다 더한 괴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복순에게 핸드폰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 태수 외삼촌의 모습은 이 영화 속의 진짜 괴물은 '태수가 아니라 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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