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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03. 2017

우동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입니까?

감독 모토히로 카츠유키
출연 유스케 산타마리아, 코니시 마나미, 마츠모토 토토이세, 스즈키 쿄카


'우동'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추운 겨울, 김이 모락 모락 피어나는 포장마차.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는 거리. 그 새벽에 먹었던 우동 한 그릇. (사실, 우동이 아니라 국수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담겨 나오던 우동 한 그릇의 기억. 우동 하면 우리는 흔히 뜨거운 것을 먼저 떠올린다. 김이 모락 모락 피어나는... 그런데 일본에는 뜨거운 우동과 차가운 우동, 또 국물이 하얀 것과 그렇지 않은 우동으로 나뉘며 우동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도 그런 것이었다.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차가운 우동이나, 미지근한 우동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게 좀 새롭게 느껴졌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우동>이라는 제목 처럼 <우동>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츠이 코스케는 세계적인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에 가지만,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소일거리로 사람을 웃기는 일을 할 뿐이다. 뉴욕에서 빚만 잔뜩 지고, 일본으로 돌아오는 코스케.
 

영화 우동

그의 아버지는 마츠이 제면소의 주인으로 남다른 장인 정신으로 우동 면발을 만드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가업을 잇지 않고, 아버지가 하는 일을 무시하며, 개그맨이 되겠다고 집을 나간 코스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게 영 마뜩잖은 눈치다. 코스케는 뉴욕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지역 정보지를 만드는 회사에 영업 사원으로 취직한다.
 
이름도 없는 지역 정보지는 그러나 영 인기가 없다. 어떻게 하면 판매부수를 올려 외국에서 진 빚도 갚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던 코스케는, 서점에서 우연히 관광객들이 맛있는 우동집을 찾으려고 거기에 관련된 책을 찾는 것을 보고 '우동집'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자고 회사에 제안하게 되고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독특한 맛과 개성을 지닌 우동집을 소개한 이후, 그들의 잡지는 판매부수도 높아지고 잘 나가는 잡지가 된다. 잡지의 인기에 힘 입어 맛있는 우동 집 찾기는 하나의 유행이 되고 그들이 소개한 그 지역의 우동 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영화 우동

덕분에 돈도 많이 벌게 되고, 승승장구 하는 코스케. 그러나 그들로 인해 우동 집이 문을 닫게 된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타지에서 우동을 먹으려고 온 사람들이 차를 아무데나 주차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가게에도 손실을 주게 된 것이다. 가게 앞이나 근처 아무데나 차를 주차했으니 통행하는데도 불편이 있었을 것이고, 가게 주인을 누군가가 신고해 버려 문을 닫게 된 것.
 
사실, 이만한 일로 가게 문까지 닫냐? 억지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본은 차를 구입하려면 주차장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하며, 주차장에 한번 주차를 하는데 드는 비용도 엄청나다고 한다. 차를 아무데나 세워 놓아 견인 당하면 벌금도 크다. 그러니, 작은 우동집에서 이로 인한 피해를 변상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을 테고, 이로 인해 문을 닫게 되는 것도 어찌보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잠깐 차를 세워두거나 자신의 집 앞에 주차 공간이 있으면 그곳에 노상 주차를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본은 그런 것에 있어서 엄격한 편이라고 한다. 자전거 주차장도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하니.


영화 우동

암튼,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코스케는 이 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 맛있는 우동 집을 소개하는 것도 점점 바닥이 나기 시작하면서 잡지의 판매 부수도 떨어지게 된다. 왠만한 집은 다 소개해버린 탓도 있었을 것이다. 코스케는 잡지사를 그만두게 되고, 우동의 맛을 보고 참맛을 느끼게 된 코스케는 자신의 빚을 대신 갚아준 아버지와 화해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면소를 이어 가겠다고 말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갑자기 쓰러져 눈을 감고 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동네 아이들이 우동을 먹기 위해 제면소를 찾아왔다가 실망한 얼굴로 그냥 돌아가는 것을 보며, 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이 노트에 남겨 놓은 응원의 메시지를 읽으며, 코스케는 제면소를 다시 일으키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그의 누나는 우동이 지긋지긋하다며 집까지 나갔다 돌아온 코스케가 갑자기 제면소를 잇겠다고 하자 이에 반대한다. 가게 문을 닫겠다는 누나의 허락을 얻기 위해 그는 아버지의 우동 맛과 비슷한 맛의 우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의 노력에 감동한 누나는 제면소를 잇는 것을 허락한다.
 
이 영화는 평생을 '우동' 밖에 모르고 살았던 아버지를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가 병 들었을 때도, 면발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다) 아들이 '우동'의 참맛을 느끼고, 아버지가 평생을 몸 바쳐 일했던 제면소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이 따뜻하게 담겨 있는 영화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 음식을 먹는 이들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행복해하고, 무표정한 아버지의 얼굴을 웃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개그맨이 되고자 했던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 해왔던 일을 직접 해보면서, 아버지가 그 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밥 한끼를 나눈다는 것. 누군가와 헤어지기 전에, 또 돌아와서 먹는 우동 한 그릇. 그 정다운 인사와도 같은 음식에 관한 영화 <우동>을 보면서 그동안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밥 한끼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떠올랐다. 밥을 먹는다는 것. 한 숟가락의 밥이 지니는 의미. 생명을 이어가고, 삶을 지속시켜 나간다는 것.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던 순간들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눈물이 났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으리라. 따뜻하고, 포근한 기억들... 밥 한그릇의 눈물, 행복, 기쁨. 그 모든 것들이 갓 지은 밥처럼 따뜻하고 윤기나게 담겨 있는 그런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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