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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07. 2017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힘과 권력의 관계

감독 윤형빈

출연 하정우, 최민식, 조진웅, 김성규, 곽도원


하정우에게는 '자기만의 옷장'이 있는 것 같다. 요술 옷장 말이다. 그는 옷장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이라는 이름의 옷을 골라낸다. 그리고 그 옷에 가장 잘 어울리도록 맵시를 낸다. 언젠가 하정우의 팬인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정우에게는 번호표가 달린 어떤 얼굴 표정들이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까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63-1번 표정을 쓰고  72번의 목소리를 써야지. 이런 식으로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했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에도 그런 표현이 나와 있어서 좀 인상적이었다. (어, 이거 내가 얼마전에 했던 생각인데 -뭐, 그러면서 ㅎ) 하정우는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서 배역에 맞게 골라서 꺼내 쓰는 느낌이다. 연기할 때의 하정우는 그런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영화가 어딘지 좀 무겁고, 잔인한 영화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성 강한 두 악인의 이야기였고, 잔인하다기보다는 어쩐지 웃기기도 한 영화였지만 말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최익현의 비굴함에서 생성되는 '웃음'의 요소들.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아닌 다른 배우가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최민식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로 보였다. 굉장히 개성이 강한 악인이었다. 전형적인 악인 캐릭터와는 뭔가 다른. 어딘가 좀 미워할 수 없는 나쁜 놈이랄까. 반면, 하정우가 그리고 있는 악인 캐릭터는 전형적인 악인 캐릭터인 것 같지만, 하정우가 연기해서 그런지 어딘가 좀 다르게 보였던 같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공교롭게도 독재정권이 판치던 시대다.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정권이 넘어가기 전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의 부제인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의 나쁜 놈들은 영화 속 두 악인 캐릭터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말인 것도 같아서 좀 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 곳곳에서 두 사람의 모습은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느낌이 있는 것도 같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전두환은 하정우가 연기했던 최형배와 겹치고 노태우는 최민식이 연기했던 최익현과 겹치는 느낌. 권력층에 기생하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최익현과 힘(주먹)으로 어둠의 세계를 평정한 최형배는 두 전 대통령을 참 많이도 닮았다. (전두환은 차기 대통령으로 노태우를 지명했었다) '힘'을 가진 자들은 대체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최형배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권력을 행사하고, 최익현은 권력층에 기생하며 자신의 세를 넓힌다. 스타일은 많이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권력을 가졌고 그것을 행사하며 나쁜 짓들을 저지르는 나쁜 놈이라는 점은 같다. 이 나쁜 놈들의 세계에서 하수는 최익현에게 이용만 당하다 끝내 버려지는 두 놈들(최형배와 김판호*조진웅)이다.


진짜 나쁜 놈은 무식하게 힘만 쓰지 않고, 나쁜 놈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그들의 권력을 제 것인양 행사하는 최익현 같은 놈인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에서 최익현은 말한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어"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하지만 그는 최형배를 배신했다는 죄책감만은 버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대부님"이라고 부르는 최형배의 목소리(환청)를 들으며 어딘가 겁에 질린 듯한 그의 표정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자기 자신만은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니까.


모든 거짓 중에서 으뜸가는 가장 나쁜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것은 나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악해야 가능한 일일듯. 악보다 나쁜 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두 나쁜 놈들은 적어도 위선적인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위선적으로 굴었던 최익현도 결국에는 상대를 끝까지 속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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