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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07. 2017

된장

오랜 기다림이 빚어내는 맛

감독 이서군

출연 류승룡, 이요원, 이동욱


"된장, 그 된장 찌개가 먹고 싶네"
 
영화는 희대의 살인마인 '김종구'의 한마디에서 출발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그가 사형 집행 전에 한 말이 "된장, 그 된장찌개가 먹고 싶네"였기 때문. DBS 특집 다큐 프로듀서인 최유진(류승룡)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한다. 김종구에 관한 취재를 하던 중 김종구의 수감 동료로부터 그가 된장 찌개를 먹다가 붙잡혔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최유진은 그의 발길을 붙잡은, 된장찌개의 맛이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흥미를 느낀다.


"찌개 먹다가 잡혔어요. 된장찌개."
 
최유진은 취재를 통해 김종구가 검거될 당시 도망갈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10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한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는 일에 몰두하다 그를 잡으러 온 경찰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유진은 붙잡히면 사형이 될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범죄자가 도망을 가지 않고, 된장찌개를 먹는 일에 온정신을 쏟았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그 맛이 어떤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 식당을 수소문 끝에 알아낸다.



"내가 항시 그 기집애 맛을 내려고 해도 나지가 않어. 특히 그 향내. 그 향내는 내가 흉내도 못 내겄어."
그곳을 찾아가 된장찌개를 맛보는 최유진은 그 맛이 기가 막히긴 했지만, 생명까지 걸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 실망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제작해야 하기에 김종구가 된장찌개를 먹었다는 산장 식당 주인과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최유진. 그러나 산장 식당 주인은, 맛집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온 줄로만 알았다가 이것이 김종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임을 알고, 인터뷰를 거부한다. 사형수와 관련된 식당으로 유명해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
 
다큐멘터리 제작은 난항을 겪고... 최유진은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있는데, 산장 주인이 최유진을 찾아온다. 산장의 여주인은 사실 그날 김종구가 먹은 된장찌개는 자신이 끓인 것이 아니고 잠깐 자신과 함께 있었던 젊은 여자가 끓여준 것이라고 고백한다. 된장찌개의 맛도 그녀에게 전수 받은 것이며 다 가르쳐주진 않아서 그 맛의 비결은 모르겠다고도 한다. 산장주인은 그녀가 한 남자를 따라 갔다고, 그 후로는 못 봤다고 말한다. 최유진은 산장주인으로부터 그녀의 이름이 장혜진(이요원)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인상 착의를 메모해 경찰 친구에게 그 여자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여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최유진은 맛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가 죽기 전에 그녀와 함께 있었던 남자(떠나던 날 같이 있었던 남자)의 행적을 쫓다가 그녀의 시신이 그와 함께 발견되었으며  그 남자가 '하수구 박'으로 불리는 하수도관 사업으로 재벌이 된 박민(조성하) 회장임을 알게 된다.
 
김종구가 사망하기 전까지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예정이었지만, 취재가 끝나기도 전에 김종구의 사형 집행이 이뤄진다. 김종구가 사망하자 국장은 최유진에게 박민 회장과 장혜진의 스캔들로 엮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라고 하고, 최유진은 '된장' 이야기로 가야 한다고 고집하며, 장혜진이 만들었던 된장을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취재는 쉽지가 않고., 한 식당에 들어가 우거지 죽상으로 밥을 먹는다. 그가 우거지상을 하고, 밥을 먹자 식당 주인은 몇마디 말을 건네고, 그는 입맛이 없어서 그런거라 답한다. 그러자 식당 주인은 "엄맘맘마. 눈구녕에 허기가 들들들 하구먼. 입맛이 없기는..."이라고 말하며 부엌으로 들어가 숨겨둔 소금을 꺼내  그가 먹고 있던 음식에 소금을 넣어준다.
 
최유진은 "짜요"라면서 짜증을 내고, 식당 주인은 "아, 글씨. 묵어봐. 보통 소금이 아닌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식당 주인은 "내가 애끼고 애끼는 건데, 하도 죽상을 하고 쳐 묵어서 내놓는 거야. 영광인줄 알아." 라고 말한다. 뜻밖에도 전혀 짜지 않고.
 
그는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식당 주인으로부터 그 소금이 장혜진의 어머니가 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할머니, 도깨비가 누나 잡아가요."
"그래, 각시 삼을라 그런다."
 
이 과정에서 최유진은 그녀의 어머니가 메주를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으며 장혜진은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메주를 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최유진은 계속 취재를 해나가면서 박민 회장의 동생 박구(조성하)를 만나게 된다. 박구를 통해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을을 떠났으며, 어머니의 된장 맛을 재현하기 위해 장을 담그러 갔던 마을에서 매화주를 빚던 한 남자를 만났다는 걸 알게 된다.


남자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인 아버지는 매화주를 담그는 것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남자(이동욱)였다.


"너 만나러 왔나봐. 왜 여기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을까? 가끔 생각했거든."
 
남자는 가업을 잇기를 원하는 할아버지의 부름을 애써 외면하며 한국에서 혼자 매화주를 빚으며 살아가던 중 혜진을 만나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결혼까지 약속한다. 남자는 혜진에게 메주를 달아 놓은 메주 방에서 "옛날에는 딸 시집 보낼 때 장을 담가서 보냈다더라, 이거 다 싸가지고 나중에 나한테 시집 와라"고 말하고. 혜진은 그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진 않지만, 수줍게 웃는다.
 
그러나 장 맛을 보여주겠다던, 혜진의 약속은 남자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남자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고 가업을 잇게 만들려고 남자의 가족들은 그를 한국으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폭풍우 치던 밤에 배를 타서 한국으로 돌아오다가 배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혜진이 남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알았던 이웃의 할머니는 혜진에게 차마 그 말을 전하지 못하고 혜진은 남자를 기다리며 장을 담그고, 첫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며 눈물을 흘린다.


"맨 처음 끓여줄거다, 약속 지켰다. 난."
 
그리고 남은 된장을 싸가지고 길을 떠나게 됐던 것이다. 언젠가 남자가 돌아오면 끓여주려 했던 것이다.
 
"아직 맛도 못 보여줬는데...만나면 맛있게 끓여주려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박민 회장을 만나게 되는 혜진. 박민 회장은 냄새를 맡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혜진 덕분에 냄새를 맡게 되고 그녀가 그 남자를 찾아 달라고 하자 그녀를 데리고 길을 떠난 것.


그리고 박민 회장은 그녀가 기다리던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전하고, 그녀는 소중히 싸가지고 있던 항아리 뚜껑을 연다. 그녀는 장독대 뚜껑에 매화 꽃잎을 덮어두곤 했는데 뚜껑을 열자  된장이 뿜어내는 향내에 취한 박민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운전대를 놓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가 나서 두 사람 모두 죽게 된 것이었다.


"매일 이곳에서 기다렸습니다. 장독엔 하얀 가루가 빼곡히 덮여 있더군요. 이곳으로 오던 길이었다 하시었습니까?"
 
최유진은 취재 과정에서 죽은 남자(귀신)를 만나게 되고. 남자가 죽어서도 그녀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그녀를 기다리느라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유진은 취재를 통해 김종구가 먹은 그 된장이 누군가를 향한 오랜 기다림이 빚어낸 맛임을 알게 된다. 그를 기다리며 그녀는 장을 담그고 된장찌개를 끓였던 것이다.


"된장은 매일 매일 햇살을 쬐어 줘야 제대로 맛이 드는 걸."
 
오래 숙성되는 것, 눈길을 보내고 지속적으로 마음 쏟아야 하는 것. 사랑도 장 담그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오랜 시간 발효시켜야 하는.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장을 담그는 일은 보통 정성으로는 하기가 힘들다. 아주 어렸을 적에 집에서 메주를 띄워 직접 된장을 담갔다. 난 메주 냄새가 너무 싫었다.


집 주변에서 항의도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항상 꿋꿋하게 해마다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갔다. 그때는 그냥 싫기만 했는데, 나중에 크고 나서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주 오랜 시간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그 일을 우리 엄마가 묵묵히 해냈던 것은, 아마도 자식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요즘은 된장을 직접 담그는 집이 많이 없다. 그때도 드물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의 된장 맛이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감탄사를 연발케 했던 건 아마도 그 속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매화 꽃잎이 스며든 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아기 흑돼지가 기른 콩, 햇빛으로만 말려 세월로 간수를 쪽 뺀 소금, 산속 깊은 곳 옻나무 사이를 흘러내려온 샘물, 그리고 매화주의 누룩을 넣어 빚어내, 귀뚜라미의 공명으로 발효시킨 메주. 햇살, 바람. 그리고 눈물..만드는 방법... 기다린다."
 
사는 일은 어쩌면 장을 담그는 일처럼,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서 발효되는 그 무엇. 메주처럼 진한 향을 풍기며 맛있게 익어가는 것. 그 기다림의 과정이 삶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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