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Jan 22. 2017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무관심이라는 이름의 폭력

감독 장철수

출연 서영희, 황금희, 황화순, 박정학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조용한 섬 무도. 그곳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온갖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여자. 김복남.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그리고 남의 아픔이나 불행에는 무관심하고, 또 타인의 불행이나 아픔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여자, 해원.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성적으로 학대받고, 노동력 착취를 당하며 억압 받으며 살아가던 여성이 딸의 죽음으로 복수의 칼을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하는... 이땅의 학대 받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 또는 자식들 때문에 참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한 '한풀이 영화'다.
 
이 영화를 열고 닫는 인물은 그러나 김복남이 아니라 김복남의 친구 해원이다.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는 해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비정규직 노동자라 그런지 해원은 남을 돌볼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없다. 영화는 해원이 길에서 치한에게 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목격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차 안에서 그 여성이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걸 보지만 해원은 차를 운전해서 달아나버린다.  


은행에 찾아와 자신의 일을 봐달라고 사정 사정하는 할머니를 차갑게 외면하고 경찰에서 온 연락을 받고 귀찮은듯 은행을 나서지만, 그녀는 경찰서에서 어제 폭행 당해 죽은 여성을 변호하지 않는다. 귀찮은 일에 휘말려서 난처해지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범인의 얼굴을 봤지만, 경찰서에서는 못봤다고 하고 경찰서를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나오는 길에, 그 여성을 죽인 범인들에게 협박 비슷한 것을 받는다. 도망치듯 직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녀의 후배가 할머니의 일을 원만하게 해결해준 것을 보고 화를 낸다.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에 위의 사람에게 잘못 보일까봐 걱정했던 것일 것이다. 그녀는 마음씨가 곱고 착한 후배에게 막말을 해대고,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아줌마가 자신에게 못되게 대한 것을 후배가 한 짓인줄 알고 후배의 뺨까지 때린다.
 
이 일로 지점장으로부터 며칠 쉬었다 오라는 말을 듣게 되는 해원. 해원은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상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챙겨오지 않았던 우편물을 경비원에게 신경질적으로 받아들고, 우편물을 살펴본다. 그 속엔 고향 친구 복남의 편지도 섞여 있었다. 해원은 그것을 뜯어보지도 않고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러다가, 복남으로부터 고향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은행 일도 쉬게 된 겸, 복남이 와 달라고 한 고향에나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해원을 반기는 복남. 그러나 해원은 복남이 흙 묻은 손으로 자신을 만져대자 싫은 티를 낸다. 그리고 고향 마을에서 해원은 김복남이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며 죽은 듯 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왜 그러고 사냐'고 말은 하지만 해원은 자신을 서울에 데려가줄 수 없냐는 복남의 간절한 부탁을 차갑게 외면한다.
 
그 시기에 해원은 은행의 지점장으로부터 자신이 해고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 자기 앞에 닥친 일이 시급했던 해원은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배를 놓쳐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다방 레지의 도움으로 딸과 함께 섬에서 도망치려던 김복남이 자신의 잡으러 온 남편의 손에 붙들려 매를 맞는 과정에서 그녀의 딸이 남편의 발길질에 걷어 채여 죽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 서울에서처럼 증언을 하기를 거부하고 모른척 한다.
 
결국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고 죽인 것은 모두의 무관심이었다. 복남을 만나고 돌아온 후 - 해원은 경찰서를 찾아가 다시 증언을 한다. 타인의 슬픔이나 불행에 무관심했던 해원은 복남이 살인자로 변해갔던 과정과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목격한 후 (복남을 죽인 것은 자기 자신이었지만)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했던 자기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복남이 그동안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쓰레기통에서 꺼내 다시 뜯어보며 그녀는 깨닫는다. 어쩌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 편지를 일찍 뜯어보지 못한 것을. 그 간절한 구조요청을 외면한 자기 자신을.
 
대체로 현대인들은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하다.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돌아보기엔 자신의 일을 생각하기에도 벅차다.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귀찮은 사건에는 휘말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만 행복하면 되고 나만 아니면 아무 상관 없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어쩌면 복남을 살인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그녀는 살인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죽어 있었다. 한 여자로서, 한 인격체로서. 그녀는 이미 없었다. 복남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해줬던 단 하나의 혈육. 사실 누구의 딸인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그녀는 여러명의 사내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을 한 채 현재 남편(만종)과 결혼했다. 왠지 만종이라는 이름은 말종을 연상시킨다. 인간말종할 때 그 말종말이다. 거기서 따온 이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복남이라는 이름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 나오는 복녀에서 따온 이름 같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딸의 죽음을 겪고 나서 그녀는 손에 낫을 들게 된다. 그녀에겐 어미로서 자식을 잃고도 온전히 슬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딸이 죽었음에도 밭에 나가 평상시와 다름 없이 감자를 캐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죽은 딸의 무덤을 집 마당에 만들었다며, 복남에게 재수가 없다는 식의 말을 하면서 침을 뱉는다. 그녀의 딸이 죽어서 슬픈 것은 그녀 혼자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멀쩡하게 웃고 큰 소리 치는 것을 보면서 복남은 복수를 결심하게 됐을 것이다. 그녀가 그 집에서 온갖 학대를 다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딸 때문이었고, 딸을 위해서였다.


딸이 죽어버린 그 집에서 복남은 더 이상 착한 조카 며느리, 말 잘 듣고 순종적인 아내 역할을 연기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복남이 손에 낫을 들고 사람들의 목을 베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녀의 불행한 삶을 지켜보았던 관객 모두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 장면은 잔인하게 그려지지만, 그 속엔 어떤 통쾌함마저 있다.


여성이라는 말에 얽매이고 억눌리고 살아가며 그 말 아래서 짓밟히고 인권을 유린 당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한풀이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조명하기도 한다. 어쩌면 영화의 주인공인 김복남이 섬에 갇혀 사는 여자였다는 점도,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해원은 복남으로 인해 타인의 삶에 깊이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녀는 그 기회를 스스로 쳐내버리면서 외부와 단절된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도, 진정한 소통, 진정한 관계맺음의 기회까지도 모두 날려버리게 된다.


그녀가 그런 사실을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나버린 뒤였다. 그때는 이미 늦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복남의 죽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주변 사람들의 삶에, 그들의 삶에 보다 깊숙이 다가갈 기회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어쩌면 해원 역시도 자기라는 섬 안에 틀어 박혀 살아가는, 도시라는 섬에 갇혀 어디 마음 붙일 데 없이 표류하고 있는 외로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복남처럼 말이다. 복남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가 잡지 못했던 건 그녀의 삶 역시 팍팍하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무조건 동경하는 복남이 그녀는 어쩌면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두 여자는 더 빨리 만나야만 했고 서로 손을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두 여자는 끝내 손을 잡지 못한다.


그녀가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 그런 점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것 또한 그래서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조금은 뒷맛이 쓴 영화였지만 무관심도 폭력의 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궁금하다면 한번 보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펜트하우스 코끼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