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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22. 2017

펜트하우스 코끼리

당신이라는 섬

감독 정승구

출연 장혁, 조동혁, 이상우, 이민정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회색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회색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맺거나 의사표시가 분명하지 않거나 회색처럼 흐릿하고, 자기 이해득실에 따라 어중간한 포지션을 취하거나 이를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회색인간은 누군가를 확실하게 내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 안에 깊이 들여놓지도 않는다.
 
개인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 변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소모적으로 변해가고, 누군가를 만나 좋은 만남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사라질 경우,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일회적인 만남으로 그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인맥은 성공법칙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언제 어디서나 강조되고 있다. 방송가에도 흔히 말하는 라인이 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거나,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인기 개그맨이나 MC와 친분관계가 있으면 더러 그 사람이 출연하는 방송에 쉽게 출연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개그맨들이 자조섞인 목소리로 난 누구누구 라인인데 별로 득 본 것이 없다는 식으로 농담을 던지기도 할 정도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맥' 라인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인맥과 인간관계는 사회생활에 적잖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학연, 혈연, 지연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이를 중시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려 들며, 결과적으로 학연, 혈연, 지연을 통해 인간관계를 더 쉽게, 깊이 갖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점점 인간관리로 변질되어갈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요즘엔 대놓고 자기 자식에게 "너 보다 못한 친구와는 사귀지 말라"고 가르치는 학부형들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이해관계 중심으로 인간 관계를 맺는 사람을 회색 인간으로 칭하며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세태도 좋지 않다고 보지만, 쉽게 인간관계를 갖고 이를 끊어내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남자, 현우와 진혁, 민석은 소꿉 친구 사이다. 현우(장혁)는 프리랜서 사진가로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 민석(조동혁)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에 부잣집 아들인 민석은 현우의 여동생 수연(이민정)과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 외국계 금융 전문가가 된 진혁(이상우)은 민석의 아내가 된 수연(이민정)과 좋아하는 사이였지만 가진 것이 없어 그녀와 결혼하지 못했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민석은 매일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며 일회적인 만남을 지속하는 섹스 중독자이고, 현우는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고 이에 집착하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진혁은 쿨한 척하지만 과거 사랑했던 수연을 잊지 못하고 12년 후 성공한 외국계 금융 전문가가 되어 오래전에 끊어진 수연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 애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도, 서로에게 진실하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못한다. 이들은 표면상으론 친구이지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기에는 처해 있는 환경도 입장도 달랐다. 과거를 붙잡고 힘들어하는 현우나, 현재 곁에 있는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명의 여자들과 소모적이고 일회적인 만남을 지속하는 민석이나, 민석의 배경을 보고 결혼했지만 민석과 거래관계 비슷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수연이나, 겉으론 웃고 있지만 그 속은 부가 곧 계급이 되어버리는 세상과 민석에 대한 열등감으로 꽉 차 있는 진혁이나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백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서로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솔직하게 드러내어 보여줄 수는 없는 관계. 사실 이들 셋의 관계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관계의 풍경화이기도 하다. 친한 친구에게조차 못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왠지 업신여김 당할 것 같은 두려움. 수평적 친구관계에서조차 물질적인 척도로 서로를 재단하고 비교하면서 갖게 되는 열등감은 쉬이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관계의 벽 역시 마찬가지로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는 부류가 있고 아닌 부류가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가 불안정함을 알면서도 이를 모르는 척 눈 감으며 타인의 불행에 깊이 가슴 아파하지도, 타인의 기쁨에 함께 기뻐해줄 수도 없는 그런 관계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어 놓고 살아가기도 한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남과 나를 비교하는 데서 불행이 시작된다고 한다. 모든 불행은 자신이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타인이 이뤄놓은 것과 자신이 이뤄놓은 것을 비교하는데서 시작된다고.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이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도 한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가지거나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눈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신경쓰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생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위태로운 세명의 친구관계를 조명하면서, 도시의 사람들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 내면의 짙은 공허함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 보면 성공한 이 세 사람의 삶은 사실 깊이 들어가 보면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들로 가득하다.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내면의 쓸쓸함과 결핍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느끼는 또 다른 고독과 결핍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도시라는 섬에 갇힌, 현재라는 섬, 과거라는 섬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독한 일상. 누군가와 닿기를 원하지만 선뜻 손 내밀지는 못하는 - 타인에 대한 호의조차도 계산으로 치환되는 도시의 삶 속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외로움. 그것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매일 술만 푸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 영화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궁금하다면 꼭 한번 보시길.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메시지는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의 영화가 된 것은 참 많이 아쉽다. 하지만 조동혁, 장혁, 이상우의 연기는 이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장혁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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