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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30. 2017

밀리언 달러 호텔

우리 안에 사랑이 있는 한

감독 빔 벤더스

출연 제레미 데이비스, 밀라 요보비치, 멜 깁슨


베를린 천사의 시로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의 밀리언 달러 호텔을 봤다. 이 영화의 각본은 보노가 썼다. U2의 보노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 곳곳에는 매스미디어가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고, 확대하고 재생산하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비판하려는 듯 보이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이는 뮤지션으로 활동해온 보노가 미스매디어에 느낀 점들과 이에 대한 염증 같은 것들을 이 영화를 통해 표출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한 남자(톰톰/제레미 데이비스)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영화는 그 남자가 옥상 위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의 삶을 보여준다. 이 남자는 밀리언 달러 호텔이라는 부랑자들이 모여 사는 낡고 허름한 호텔에 살았다. 그 남자에게는 최근에 죽은 이지라는 친구가 있었다.


영화 밀리언 달러 호텔

그는 언론 재벌의 아들이었는데, 그가 죽자 그의 아버지는 자살일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FBI에 수사를 의뢰하고, FBI에서 뛰어난 실적을 자랑하는 요원 스키너(멜 깁슨)가 파견된다.
 
그는 밀리언 달러 호텔의 모든 투숙객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시작한다. 언론 재벌의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은 매스미디어에서 연이어 보도된다. 그 과정에서 진실은 조작되거나, 과장되어 전달된다. 이는 영화 속에서 인디언 남자(제로니모)가 그린 그림이 자살한 남자의 그림으로 둔갑하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고 언론은 자살한 언론 재벌의 아들이 하층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기 위해 부랑자들과 함께 생활한 화가라고 떠벌리고, 무명 화가는 이러한 상황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 매스미디어는 진실을 왜곡하고, 그렇게 생산된 정보는 대중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밀리언 달러 호텔

스키너는 냄새를 맡은 언론들이 밀리언 달러 호텔의 투숙객들을 찾아와 이지에 대해 묻고 이지의 자살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하자 이지의 아버지이며 방송국 사장이기도 한 언론 재벌에게 압박을 당한다. 빨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공권력을 남발하기 시작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투숙객들을 괴롭힌다.


이 과정에서 스키너는 죽은 남자와 친하게 지냈던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톰톰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접근해 늘 맨발로 다니며, 서점과 책에 파묻혀 지내는 여자, 그가 짝사랑하는 엘로이즈(밀라 요보비치)와 만나게 해주겠다고 꼬드겨 그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려고 한다.
 
엘로이즈는 톰톰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스키너가 밀리언 달러 호텔의 투숙객들을 그냥 내버려두겠다고 약속하며 톰톰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받아들인다.
 
스키너는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약혼녀를 만나러 갈 생각에 톰톰의 방에 도청장치를 하고 엘로이즈와 톰톰의 대화를 엿듣는다. 그러나 둘의 대화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스키너는 톰톰에게 접근해 범인을 알려 달라고 말하지만 톰톰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스키너는 사건을 빨리 해결할 생각으로 엘로이즈가 범인이고, 그녀를 잡아 들이겠다고 톰톰을 겁박한다. 엘로이즈를 사랑하는 톰톰은 자신이 이지를 옥상에서 밀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믿지 않는다.
 
스키너가 집요하게 추궁하자, 톰톰은 엉겁결에 제로니모가 범인인 것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제로니모는 FBI에 체포된다. 제로니모가 붙잡히자, 투숙객들은 죽은 이지가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제로니모의 그림을 팔 수 없게 될까봐 톰톰을 범인인 것처럼 몰아간다. 톰톰은 자신 때문에 제로니모가 잡혀간 것에 대해 괴로워하다 투숙객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거짓 자백 영상을 촬영한다.
 
테이프는 방송국에 전달되고, 스키너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톰톰은 범인이 아니며, 이지는 자살한 것 같다며 이지의 아버지를 설득한다. 그러나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이지의 아버지는 톰톰을 범인으로 몰아가려 한다. 톰톰을 사랑하게 된 엘로이즈는 톰톰이 거짓 자백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감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를 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능이 낮은 톰톰은 TV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이 기쁠 뿐이다.


영화 밀리언 달러 호텔

엘로이즈는 톰톰을 데리고, 경찰의 눈을 피해 하룻밤을 보낸 후 남미로 가서 살 계획을 세우지만, 톰톰은 다음날 밀리언 달러 호텔 옥상 위에서 뛰어 내린다.
 

영화 밀리언 달러 호텔

이지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은 이렇다.
 
톰톰은 이지가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걸 막으려고 그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이지는 엘로이즈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고, 자살할 거라고 말하며 톰톰에게 엘로이즈는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라고. 너무나 쉽게 몸을 허락했다고 말한다. 그 말에 톰톰은 그를 잡고 있다가 놓아 버리게 되고 이지는 옥상 아래로 떨어져 죽은 것이었다.
 
이지가 자살한 것은 엘로이즈 때문으로 보인다. 엘로이즈는 영혼이 텅 비어 있는 여자였다. 삶에 아무런 희망도 없는 듯 살았고,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여자를 이지는 사랑했던 것 같다. 엘로이즈는 자신을 막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늘 맨발로 거리를 걸어 다니며 아무 남자하고나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고, 누구에게나 몸을 쉽게 허락하는 여자였다.


그녀에게 삶은 소비되어야 할 어떤 것처럼 보였다. 이지는 엘로이즈가 너무 쉽게 자신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실망했던 것 같다. 그것은 어찌 보면 엘로이즈에게 자신이 아무런 의미도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이 세상은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고, 그것은 그에게 크나큰 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을 숭배하며 명예를 중시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부랑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 역시 마약에 절어 지내며 삶을 소비했다.


엘로이즈의 텅 빈 영혼은 톰톰을 만나 채워지지만, 톰톰은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으로 이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괴로움 때문에 자살을 택함으로써 엘로이즈를 떠난다.
 
삶은 그 자체로 완벽하며, 최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죽음의 순간에 다다라서야 톰톰은 깨닫는다. 살면서 그가 원했던 단 한가지는 엘로이즈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신의 마음이 가 닿는 것. 엘로이즈에게 닿는 것, 그것 뿐이었다.
 
톰톰은 자살을 선택하지만,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가장 행복했던 이 역시 톰톰일지도 모른다. 다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좇으며 살아간다. 명예나 돈, 안락한 생활을 좇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것들은 어쩌면 이 영화 속에서 비춰진 것처럼 가짜이고,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던, 엘로이즈는 톰톰을 만나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나는 그런 엘로이즈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만이 유일하게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 있는 것. 유일하게 가치 있는 한 가지.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가 톰톰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때 나 역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슴이 막막(寞寞)했다. 이 영화는 마치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탐정 영화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외피는 그런지 모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톰톰과 엘로이즈의 사랑은,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어떤 것이었다.
 
삶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삶을 지속해야할 그 어떤 이유도 없어 보이는 그들 가운데서도 톰톰만큼은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오직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길 원했고, 사랑만을 원한 톰톰의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은 진짜였다. 그것만은 오직 진실로 가득 차 있는 어떤 시간들을 둘 사이에 데려다 놓는다.


어둠 같은 시간들 속에서도 엘로이즈에 대한 톰톰의 사랑만큼은 길을 잃지 않았다.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이 그의 시간들을 환하게 비춰주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도 사랑으로 서로를 채울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시간은 길을 잃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혼란스러운 그 소용돌이 같은 시간 속에서도 부서지거나 깨지지 않았다.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한, 우리 안에 사랑이 있는 한 삶은 그 자체로 완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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