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사건과 방관자 효과
지은이 로렌 슬레이터
옮긴이 조증열
펴낸 곳 에코의 서재
심리학 관련 책을 많이 접한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 유명한 심리실험 10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해리 할로의 애착 실험(철사 원숭이 이야기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외에도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방관자 효과에 관한 실험, 한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소개된 적이 있는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당성에 관한 실험 등.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10개의 실험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스키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키너는 딸을 자신이 특별히 고안한 상자에서 키웠는데, 이러한 사실이 학계와 세상에 알려져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상자에서 키워진 딸이 권총 자살을 했다는 루머까지 나돌 정도였는데, 이 책의 저자는 스키너의 딸을 직접 만나 상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취재결과 스키너의 딸은 멀쩡히 잘 살아 있으며, 상자는 세간에 알려진 대로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수록해 스키너의 상자가 가진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한다.
무관심도 폭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전에 일어난 윤일병 사건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방관자들의 심리였다. 가해자들이 윤일병을 폭행할 동안 그것을 목격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 왜 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윤일병을 돕지 않았을까? 왜 그들은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상명하복의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것 때문일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읽으면서 '책임감 분산'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윤일병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고, 어린시절 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우선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 나온 책임감 분산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자.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책임감이 공평하게 나누어지기 때문이었다. 책임감 분산이 사회적 예절과 결합하게 되면 그것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생사가 걸린 상황도 무시하게 된다. 가해자는 단 한 명뿐인데 대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108쪽) 中
집단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책임감 분산은 더 크게 나타난다. 실제 이것을 입증하기 위한 심리학 실험에서 집단의 크기가 작았던 경우 책임감이 분산되는 효과는 적게 나타났다.
이 대목을 읽고 어린시절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던 것도 책임감 분산 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형제가 많았기 때문에 심부름을 시키면 서로 누군가가 그 심부름을 갈 것이라 생각해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이후부터 부모님은 누군가를 가리키며 심부름을 시키셨다.
만약 윤일병이 방관자 중 한 사람을 가리키며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면, 그 사람이 윤일병을 도와줬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 본다. 방관자들 대다수가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아닐까? 누군가가 먼저 윤일병을 나서서 도왔다면 그 사람을 따라하는 다른 수많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나서 본 적이 있다. 내가 먼저 나서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길에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한다던지 하는 사소한 행동) 다른 사람도 나를 따라하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려는 심리가 있다. 동조효과가 그것이다.
이 동조효과는 나쁜 일을 따라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빨간 신호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건너면 따라 건너는 것) 그러니까 어떤 행동을 다수가 취했을 때 그 다수에 속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동조하게 되는데 그 집단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것이 나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집단에 속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방관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방관자가 많았던 것으로도 보인다. 누군가 단 한 명이 윤일병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면 윤일병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가해자보다 방관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텐데 방관자들이 힘을 합쳤다면 윤일병을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군대는 계급이 높아지면 어떤 권력이 생기는 곳이다. 상명하복의 군대이다 보니 상급자가 하급자를 괴롭히면 중간계급의 사람들도 그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그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도전을 했다가 자신도 그런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계급장을 없애고 권력을 분산시켜야 그런 일이 사라질까?
윤일병 폭행을 주도했던 이병장도 폭행의 피해자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경우 폭력은 답습된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곳이 군대인 것도 같고. 윤일병 사건을 접하면서 예전에 보았던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심리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인만큼 읽어두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일을 기억하거나 앞날을 향해 가느라 바빠 현재에 거의 집중하지 못한다(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기억이다. 모든 기대는 과거의 학습을 토대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재가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동물들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행복해 보이는 것이리라. (290~291쪽)
결국 사람의 인생이란 데이터 값이나 기댓값, 변수와는 같을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흡수되고, 변형되고, 다시 씌어지는 이야기이다. (머리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