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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y 24. 2017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소설가의 일상을 엿보다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시대가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는 것을 '하루키하다'라고 표현한다는 기사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식의 표현이 뭔가 재미있었다. 20대 초반에 친구들 사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는 것이 뭔가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가라고 물어보는 사촌언니에게 '깊은 상실감과 허무를 느꼈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해 어딘가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느낌의 소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꽤 좋아하고 그가 쓴 에세이도 좋아하지만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가의 책은 몽땅 다 읽어야지'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간이 나오면 역시 주목하게 되는 작가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성실히 글쓰기를 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계속 글쓰기를 해 나가기 위해 그가 견고하게 설계한  그의 심플한 생활 방식은 어딘지 존경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튼 그의 작품에는 그가 어떤 작품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어딘가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듯한 도넛화 인간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것은 어딘가 결핍된 인간 존재의 면면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작가라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기쁘다고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57쪽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에서 그가 다작을 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 성실하게 작업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하고 '역시'라는생각을 했다. 역시 즐겁지 않으면 오래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감사하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苦役)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57쪽),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모든 창조적인 직업군에 속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정말로 그 일을 좋아해서 - 단지 생계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 손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이 책은 그런 일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듬뿍 발라 소설을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직도 새로운 소설을 쓰기 전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는 베테랑 작가, 늘 신인의 마음으로 새로운 소설을 써 나가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을 엿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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