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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2. 2016

내 아내의 모든 것

관계의 허들 넘기

지진처럼 시작된 사랑도,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어딘가로 숨어 버린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수줍어하고 여성스럽던 내 아내가 잔소리쟁이에 독설녀로 변신해 아침, 저녁으로 귀가 따갑다. 결혼생활에 지쳐버린 남자는 지방 발령 근무를 자원하며 아내의 곁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남편 밥 챙겨 먹이는 걸 삶의 기쁨이요, 보람으로 알고 사는 아내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남편을 따라 온다.
 
아내와 이혼하고 싶어진 남자는 혼인 파탄의 사유를 아내에게 물어 이혼을 하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우연히 옆집에 마성의 카사노바가 사는 걸 알게 되고 그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 법한 에피소드로 버무려진 영화 같다. 잘못 풀면 '막장' 드라마 버금갈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으나 결혼하고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았던 한 여자의 자아 찾기가 살짝 들어가 있어서 훈훈한 결말의 영화가 된 것 같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사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혼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누구의 엄마나, 아내로 더 많이 불려지고 또 대체로 그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사회활동을 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누구누구 엄마가 되어버리거나, 누구의 아내로만 남게 된다. 결혼은 다른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 하나의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배우자나 자식에게 종속된 삶을 산다고 생각할때 - 내가 거기에 종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그 지점에서부터 배우자는 나를 가두는 사람이 되고 집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으로 변해버리는 것 아닐까?  삶 자체가 가정에 매몰되어 결혼 전의 내 삶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 나는 없어져버린다는 생각이 사실은 결혼 생활에 이상기류가 생기는 바로 그 지점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두 남녀가 하나의 가정을 꾸리고, 함께 평생을 행복하게 걸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상대방의 마음(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또 내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아직도 중요한 사람이고, 그 사람의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라는 자기의 인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 받고 싶어한다.


아내는 그것을 확인 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지만, 남편은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 결혼 후의 아내의 일상이나  감정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남편의 무관심에 아내는 지쳐가고, 그럴수록 남편에게 자신이 아직도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려 든다. 그리고 이런 아내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남편을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변화는 아내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의 주요 대상이었던 남편에게서 눈을 돌려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모든 변화는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내가 변하면 남도 변화시킬 수 있고, 좋은 변화는 세상도 달라 보이게 만든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변화하는 지점.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면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살아있는 집에서는 어떻게든 소리가 난다고. 침묵이 공간을 잡아먹게 만들지 말라는 말.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이 영화 속에서 아내가 했던 이 말이 내내 생각났다. 결국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나 자신하고의 대화든, 타인과의 대화든. 소통하기 위해서는 소리가 필요하고, 그 소리가 누군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도 하고, 타인과의 연결지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니 알고 싶다면 소리 내어 물어볼 일이다. 나 자신에게든, 남에게든.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바다를 어떻게 건널 수 있느냐고. 그러고 나서 소리들로, 둘 사이의 언어로 노를 저어 갈 일이다. 일렁이는 관계의 험난한 파도를 넘어볼 일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이 바다를 건너면  그 끝에 어쩌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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