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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2. 2016

천국보다 낯선

천국에서 길을 잃다

이야기는 뉴욕에 사는 윌리의 집으로 헝가리에 사는 사촌 에바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에바는 원래 클리블랜드에 사는 숙모 집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숙모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뉴욕에 사는 윌리의 집에 열흘간 머무르게 된다. 에바에게는 처음 미국, 그것도 뉴욕에 온 것이었지만 사촌인 윌리는 카드 도박을 하러가거나, 경마장에 가서 시간을 보내며 그녀를 혼자 놔두고 집을 비우기 일쑤다. 어쩌다 집에 있는 날도 텔레비전만 보며 시간을 보낸다. 에바는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Screamin′ Jay Hawkins)의 록 음악을 들으며 무료함을 달래고, 윌리는 그런 에바에게 짜증을 낸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

에바는 따분해 보이지만, 그 따분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신 식료품 가게에 가서 몰래 물건을 훔쳐 온다. (물론 이 부분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녀는 외투 속에 물건들을 숨겨 오고 돈이 어디서 나서 이런 걸 사왔느냐고 묻는 윌리에게 돈이 있다고 둘러댄다) 열흘 정도 머무르다 에바는 예정대로 클리블랜드로 떠난다.


윌리는 에바가 떠나기 전에 원피스를 선물한다. 에바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며 싫은 기색을 보이자 윌리는 "너도 여기 사람들(미국인)처럼 옷 입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그 옷을 입기를 강요한다. 에바는 윌리의 집을 떠나는 날 잠깐, 윌리가 사준 원피스를 입었다가 나오면서 몰래 벗어 집 앞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

에바가 떠난 후 윌리는 친구 에디와 함께 간 경마장과 카드 도박장에서 큰돈을 딴다. 윌리는 에디의 친구에게 차를 빌려 에디와 함께 무작정 클리블랜드로 떠난다. 클리블랜드에서 에바를 다시 만나게 되는 윌리. 윌리는 숙모 집을 찾아가 에바가 핫도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며칠 동안 에바와 함께 시간을 보낸 에디와 윌리는 떠나는 날, 에바에게서 자신을 납치하러 와 달라는 농담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


에바는 숙모의 잔소리와 감시 속에서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윌리에게 그곳의 생활이 따분하고 재미없다며, 윌리에게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면 자신을 납치하러 와 달라고 말한 것이다. 윌리는 그 말에 웃으며 "납치해서 따뜻한 곳으로 데리고 가 주겠다"는 농담을 한다. 클리블랜드는 너무 추워서 호수도 얼어붙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에바와 헤어져 뉴욕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윌리는 친구 에디와 함께 플로리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던 윌리는 즉흥적으로 에바를 데리고 플로리다에 가자고 에디에게 말한 후 클리블랜드로 돌아가 에바를 차에 태운다. 플로리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에바는 때때로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록 음악을 듣고, 여느 때처럼 월리는 질색을 한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

플로리다에 도착한 세 사람. 플로리다로 떠나기 전에는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하며 즐기려 했던 윌리는 플로리다에 도착한 다음날, 여느 때처럼 에바를 혼자 남겨둔 채 에디와 개 경주를 보러 나간다. 에바는 두 사람이 뉴욕에 있을 때처럼 자신만 놔두고 나가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내고, 개 경주에서 갖고 있던 돈을 몽땅 잃은 윌리는 개 경주를 보러 가자고 말한 에디에게 화를 낸다.


다음날도 에디와 윌리는 경마장으로 가고 에바는 두 사람을 따라온 것을 후회한다. 혼자 남겨진 에바는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선물 가게에서 산 모자를 쓰고 산책을 한다. 바닷가를 거닐던 에바는 그곳에서 어떤 남자가 모자를 보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주고 간 돈봉투를 받는다. 에바는 모텔로 돌아와 돈봉투에서 돈을 조금 빼낸 뒤, 공항으로 간다는 메모와 함께 돈을 두고 사라진다.
 
경마장에서 돈을 따서 돌아온 에디와 윌리는 에바가 사라진 사실을 알고 그녀를 찾으러 간다. 윌리는 에바가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고 생각하고 비행기표를 끊는다. 그리고 에디만 남겨둔 채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오른다. 에바는 부다페스트로 가기 싫어 다시 모텔로 돌아오지만 아무도 없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의미있게 봐야 하는 것은 헝가리에서 온 에바는 남았고, 윌리는 헝가리로 다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미국인 행세를 하며 미국인이 되고 싶어했던 윌리는 결국 에바를 핑계로 헝가리로 돌아간다. 이는 윌리가 미국 주류 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윌리는 '미국인' 행세를 하지만, 미국인이 될 수 없었다. 별다른 직업도 없이 경마장과 카드 도박장을 돌아다니던 윌리는 뉴욕에 있을 때는 뉴욕을 떠나고 싶어했고, 클리블랜드에 있을 때는 클리블랜드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는 끊임없이 장소를 옮겨 다니며 더 나은 삶을 모색하지만 그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플로리다에 도착하지만 그는 경마장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경마장 안을 달리는 말과도 같이 같은 자리만을 맴돌며 그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에바는 그의 그러한 모습에 넌더리를 낸다. 어떻게 보면 에바는 헝가리를 떠나기 전 윌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거울일일 것이다. 에바는 윌리처럼 뭔가 다른 미래를 꿈꾸며 헝가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녀 역시 윌리처럼 미국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핫도그 가게 점원이 전부였다.


그녀는 플로리다로 떠나자는 윌리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정도로 삶에 지쳐 있었다. 그녀는 윌리와 함께 플로리다로 떠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헝가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그저 낯선 곳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녀는 아무런 미래도 없어 보이는 헝가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토록 미국인이되고 싶어했던 윌리는 의외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에 선뜻 몸을 싣는다. 그는 천국도 아니고, 낯설기만 한 장소에서 더는 이방인인 채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에바의 현재는 윌리의 과거이고, 에바의 미래는 윌리의 현재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라는 그릇 안에 반죽해 담아놓은 것처럼 혼란스럽다. 이 영화 속의 시간 역시 순차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이들이 등장하는 장소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장소처럼 흐릿하다. 장소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별다르게 변하는 것 같지 않다. (이는 이 영화가 흑백 영화라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로 보인다)
 
즉흥적인 만남, 사건들.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하기는 아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도, 당신도 - 이 영화 속 에디와 에바, 윌리와 마찬가지 아닐까. 그 무엇도 분명하지 않은 회색의 시간. 그런 시간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곳은 이 영화의 제목처럼 천국보다 낯선 어떤 장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는 누구나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방랑하며, 자신의 시간 속을 부유하는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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