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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Sep 07. 2017

무인양품 디자인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한 끗 차이가 많은 것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든다. 한 끗 다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무인양품 디자인은 무인양품 디자인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무인양품 디자인을 읽으면서 작은 디자인 하나에도 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의지, 또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고 사용자의 생활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키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디자인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의 디자인만 봐도 이 책을 펴낸 미디어 샘에서 무인양품 다운 어떤 것을 책의 디자인에서 구현해내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하지만 선명한 느낌의 책 디자인이다. 이 책의 디자인에서도 한 끗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코드다. ISBN코드와 바코드가 보통의 책에는 책 뒤표지 아래쪽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위쪽에 들어가 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책을 고를때 가장 눈여겨 보는 것은 뭘까?

책의 내용과 제목, 표지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첫인상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가격이다.

ISBN코드 밑에 이 책의 가격이 굵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가격이 눈에 잘 보이도록 한 것이다. 어떤 물건의 구매를 결정할때 가격은 구매 여부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보통의 책에는 ISBN코드와 가격 표시가 같은 굵기로 표시된다. (물론 크기는 다르다) 이 책의 표지가 하얗기 때문에 더 눈에 잘 띄는 부분도 있긴 하겠지만, 이 책은 ISBN코드를 굵게 표시하지 않았다. 가격만 굵고 선명하게 표시했다. 사실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가격이지 ISBN코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출판인들에게는 ISBN코드 표시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ISBN코드는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에게는 이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냥 바코드 표시 옆에 붙어 있는 일련번호일 따름이다. 무인양품 디자인이라는 책을 펴낸 미디어샘에서는 이 점을 간파한 것 같다. 그래서 가격만 강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무인양품 디자인의 철학은 이렇듯 이 책의 표지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한 끗 다른 차이 말이다.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참 무인양품스럽다"라는 것이었다. 무인양품답다는 것. 그것은 곧 무인양품의 스타일일 것이다.

무인양품은 누구나 다 알듯이 스타일이 없는 것이 스타일이다. 단순한 삶의 가치. 단순하게 사는 것. 그런 철학을 제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하지 않고 쉽게 다가오면서도 또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이다. 이 단순성이 마치 스펀지처럼 사람들을 무인양품 속으로 빨아들인다.

여백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는 늘 잊고 산다. 유행을 따라가고 눈에 띄는 것, 화려한 것을 추구하지만 그런 것들에 금방 마음이 식어버리기도 한다. 질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오랫동안 사랑 받는 것은 무난한 디자인, 단순하고도 쉬운 디자인이다. 패션으로 치면 베이직한 것. 가장 기본이 되는 것.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비움을 일상에서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기에 무인양품의 철학이 더욱 돋보이는 것 아닐까?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것.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곳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물건. 무인양품이 지향하는 디자인이란, 제품의 이미지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무인양품의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 씨는 무인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이 무인양품의 철학의 정수를 보여주는듯 하다)



덜어내고 덜어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오히려 더 많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힘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그때 깨닫고
있었습니다. (82쪽)


꽉 짜여진 어떤 것, 꽉 채워져 있는 것에서는 그 무엇도 상상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비어 있다면? 여백이 있다면 무언가를 상상하고 덧붙일 수 있다.


무인양품은 단순히 장식을 덜어내 깔끔하게 만든다거나 모던하게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의 '텅 비어 있음'을 추구하는 거죠. 여백이 많은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쓰는 방식이나 이미지를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죠. 스무 살 젊은이가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 고르는 테이블과 예순 살 된 부부가 자기 집 거실에 놓기 위해 고르는 테이블이 같은 것이어도 좋다는 겁니다. 테이블을 어떻게 놓는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니까요. 여백이 가진 유연성이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83쪽)

무인양품은 여백을 추구하기에 늘 고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소비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시상식도 진행한다. 그리고 고객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반영해 조금 더 나은 어떤 것을 만들려고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남편이 고리가 달린 고무장갑을 사왔다. 스카치 브라이트에서 나온 제품이었다.

늘 설거지를 하고 나서 고무장갑을 수도꼭지에 걸쳐 두면서 생각했다.

"이걸 좀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을까?"

어떤 날은 싱크대에 또 어떤 날은 코브라형 수도꼭지에 걸쳐 두면서 고리가 달린 고무장갑이 나온다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제품이 실제로 나온 것이다. 아마도 고객의 의견을 반영했거나 고리가 달려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만들어둔 것이겠지만 네이버에서 스카치 브라이트를 검색하니 고객의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사이트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곳에 올라온 어느 고객의 아이디어는 아니었을까? 사실 남편은 알고 사온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그것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집어 왔다고 한다. 아마도 고리가 하나 더 달려 있으니 가격이 일반 고무장갑보다는 비싸서 잘 안 팔렸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걸어서 정리할 수 있으니 건조가 더욱 쉽게 되고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들어 더욱 좋은 것 같다. 그 고리형 항균 고무장갑을 보면서 무인양품을 생각했다.

나는 사실의 기업의 성공 전략을 정리해둔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디어를 모으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발전시키고 고객과 소통하며 점점 성장한 무인양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고객의 의견을 반영할 뿐 아니라 더 나은 생활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정된 자원을 아껴 질 좋은 제품을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시하는 그런 기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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