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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03. 2017

임신 캘린더

싱크대 밑에 양파와 눈길 주기

오가와 요코의 임신 캘린더는 이 책의 제목인 임신 캘린더와 2편의 소설이 함께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임신 캘린더는 여성 작가가 쓴 여성의 임신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 읽어보고 싶었다.

임신 캘린더는 언니의 임신을 곁에서 지켜보는 동생이 화자로 등장 하는 소설이다. 같은 여성으로서 언니의 임신을 바라보는 미혼 여성의 심리와 임신에 대한 생각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뒤이어 등장 하는 <기숙사>는 뒤로 갈수록 약간 섬뜩한 이야기였는데 대학 입학을 앞둔 사촌동생에게 자신이 다녔던 기숙사를 소개해주는 여성이 화자로 등장한다. 그 기숙사에는 양쪽 팔이 없고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는 그 기숙사에 살고 있는데 그 기숙사에서 사라진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를 통해 접하게 된 주인공은 어느날부터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사촌동생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사라진 두 남성과 남성의 육체에 묘한 관심을 갖고 있는 독신인 기숙사 남자 선생님의 이야기가 실종과 살인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면서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세 번째로 등장 하는 <해 질 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에는 결혼을 앞둔 여성이 화자로 등장한다. 그 여성은 어느 비 내리는 날 신혼 집에 페인트 칠을 하다가 전도를 하러 다니는 남성과 아이를 만난다. 우연히 그들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 아이가 그 남자의 아이이며 그들이 초등학교 급식실을 바라보는 취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남자의 유년시절 급식실과 수영장에서의 일화를 듣게 되고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자신을 위로해준 무언가를 떠올린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속 화자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대화를 통해, 또 타인을 관찰하는 행위로 삶의 이면에 있는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이거나 또 어떠한 진실을 깨닫기도 한다.


오가와 요코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집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썩어간 양파가 고양이 머리로 보여 소스라치게 놀랐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 양파가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양이 시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소설의 진실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무심코 지나쳤던 어떤 것을 어떤 계기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였기에 작가의 이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소설이란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무심코 지나친 양파가 썩어 다른 모양으로 보일 정도로 그 형태를 잃어갔듯 제때 관심 주지 못하고 지나쳤던 그 무언가 속에 삶의 진실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얘기이고 소설은 그런 것들에 관심을 주고 그것을 드러내보이는 것이라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 세 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 눈길 주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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