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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09. 2017

국수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을 들여다보다

지은이 김숨 페이지 372쪽 출판사 창비


당신을 물고 쏘는 책만 읽으라고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카프카의 그 말을 떠올렸다. 읽으면서 어쩐지 읽기 불편했던 건 이 책이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구제역으로 살처분이라는 이름 아래 생매장되는 돼지들에 관한 생각 같은 것. 구덩이라는 작품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는 그냥 구덩이를 파는 것 뿐이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따라붙는 죄책감을 지워내려 하지만 그건 쉽게 떨쳐지지 않고 결국 그를 피 흘리게 한다.


막차

이 소설집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막차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을 만나 미장원을 운영하며 악착같이 살았던 중년 여성이 화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죽어가는 며느리의 문병을 가기 위해 탄 막차 안에서 며느리에게 병원비로 보태준 돈을 아깝게 생각한다. 그런 중년 여성이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을 읽는 것이 어쩐지 불편했다. 그녀의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모습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병간호를 해줘야 할 텐데, 그러려면 못해도 이틀 밤은 영락없이 병실 보조 침대에서 자야 했다.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가 걸리니 나흘을 꼬박 미장원 문을 닫아야 했다.

"돈 나올 구멍이라고는 미장원밖에 없는데 나흘 문 닫기가 어디 말처럼 쉽나요. 어디서 다달이 연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다녀오는 차비 또한 만만치 않았다. 차비는 그녀가 오년 넘게 동결해 받는 파마값보다 오천원이나 더 비쌌다. (막차, 38쪽)


국수

국수는 아이를 낳지 못해 소박을 맞고 자신의 아버지와 재혼을 한 계모를 위해 직접 반죽을 해 국수를 끓이는 여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기혼 여성인 그녀는 아이를 가지려 하지만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아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임신했다가 유산한 상태였다. 그녀는 그것이 어쩐지 계모 탓인 것만 같아 그녀를 원망한다. 그녀가 설암에 걸린 것을 알고 그녀가 어린시절에 자주 끓여줬던 국수를 그녀의 집에서 끓인다. 그리고 국수를 끓이며 계모의 삶에 대해 연민을 갖게 되며 이해하게 된다.


혹 당신이 뽑아낸 국숫발들은 끈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자식이란 끈 대신 밀가루로 반죽을 개어 끈들을 만들어냈던 게 아닐까요. 그 끈들이 허망하게 불어터지고 늘어지는 게 싫어 꾸역꾸역 당신의 입안으로 말아넣었던 것이 아닐까요. -국수 (69쪽)


옥천 가는 날

옥천 가는 날은 구급차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태워 장례식장이 있는 옥천으로 향하는 자매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매들 중 애숙은 요양급여를 타기 위해 옥천에서 홀로 살던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어머니에게 치매 노인인척을 하라고 했던 일을 후회한다. 자매들은 어머니가 생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하셨던 옥천을 모시지 못하고 간 것을 후회한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은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주인공이다. 홀시아버지는 혼자 사는 독거노인으로 중풍이 온 후 거동이 불편해지게 되자 아들 내외와 함께 살게 된다. 그녀는 은근히 홀시아버지를 홀대하고 홀시아버지도 그러한 점을 눈치 채고 집을 나가 요양원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홀시아버지의 집을 판 돈을 남편이 주식 투자를 했다가 홀랑 날려 먹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녀는 집을 나가기 전 홀시아버지가 이웃집 여자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가 돈을 갚으러 올 거라는 소리에 그 여자를 기다리다가 홀시아버지를 찾으러 집을 나선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자식이 있어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없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얼마 전까지 아내와 함께 살았지만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떠돌이 개와 산다. 떠돌이 개는 유기견으로 안락사를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을 가엽게 여긴 아내가 생전에 집으로 데려와 키우던 개였다.

노인은 개를 미워하고 추운 날씨 속에서 금니를 내다 팔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개에게 물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명당을 찾아서

명당을 찾아서는 노후 자금으로 땅을 사서 시골에 가서 살려는 부부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귀농을 생각하고 사려던 땅 구경은 커녕 사채업자나 빚쟁이에게 쫓기는 듯한 부동산 업자에 의해 석모도까지 가서 돈만 빼앗기고 죽게 된다.

그 밤의 경숙

콜센터에서 일하는 경숙이란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퀵서비스 기사와 시비가 붙는다. 고성이 오가는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얼굴이 지워진 목소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그 밤에.

구덩이

구덩이는 구제역 살처분을 위해 구덩이를 파는 일을 하게 된 굴착기 기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젊은 시절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와 처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런 그를 그의 아들은 미워하고 부모를 이혼시키려 한다. 그는 아들의 전화를 받지 않고 돈사에서 주인의 아들과 마주친다. 돼지를 묻어 죽일 구덩이를 파는 그에게 돈사 주인의 아들은 적의를 감추지 않고 개새끼라는 욕을 퍼붓는다. 그는 그 욕을 들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반추한다.

대기자들

사랑니를 발치 하기 위해 치과에 간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이혼 소송 중이다. 진료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의사는 진료를 시작하지 않고 그는 대기자들 속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자신이 몇 번째인지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국수를 읽으며 때론 뭉클했고 또 때론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런 불편함이 내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불편함이 좋았던 거 같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이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죽음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기초생활 수급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빈곤 노인이나, 자식에게 얹혀 살며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노인, 온갖 욕설과 씨름하고 성희롱까지 견뎌내가며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그저 목소리로만 남는 콜센터 직원의 삶 같은 것들이 이 소설집 속에는 잘 드러나 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그늘진 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한데 뭉쳐져 있는 국수는 우리 사회의 그늘,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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