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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18. 2017

뱀과 물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

지은이 배수아 페이지 312쪽 출판사 문학동네


각기 다른 지면에 발표된 소설들이 뱀과 물이라는 장편 소설로 묶였다. 내용이 연결되는 지점이 보이기 때문에 연작 소설로 쓰여졌던 것을 장편으로 묶어 낸 거 같다. 소설집이었다면 소설집이라고 표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편 소설로 나오기 때문에 연작 소설을 묶어 단행본으로 펴낸 거 같다.

이 소설 속에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 아이들에게는 하나같이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를 찾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있었으나 잃은 아이들,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이 소설에 등장 하는 아이들은 '고아'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종종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나 하나님을 상징한다. 이 소설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나를 구원해줄 이'로 드러나고 있는 거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눈의 여왕을 떠올리기도 했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 속에서 카이에게 눈의 여왕은 말한다.


네가 영원이라는 단어를 맞출 수 있으면
그때는 네가 너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아버지를 찾지만 찾지 못한다.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말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94쪽, 뱀과 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스스로에게는 대부분 몇 개의 장면으로 가까스로 기억될 뿐이다. 나머지는 나의 성장을 지켜봐주는 존재인 부모나 어른의 증언에 의해서 그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가까스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은 그렇게 채워진다.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7살 이전의 기억이란 까마득한 것으로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도 못할 때 엄마 곁을 떠난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알 수 없거나 알아보지 못한다.

어른이 된 아이는 과거의 자기 자신,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의 자신과 마주치지만 애써 아는 척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흐릿하거나 성장의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지워버리는 대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대신할 이야기를 상상으로 만들어낸다.



뭐라고요? 우리는 어디로 가느냐고요?
(221쪽, 뱀과 물)


누구나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미래 역시 망상이 되고 그건 허상이 되거나 내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세계가 된다. 가까스로 알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순간을 사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 뿐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구원은 지금의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허상의 세계인 거울 속의 세계를 깨뜨리는 것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은 채로 성장한다. 어린 시절을 갖지 못한 채로, 갖지 못했으니 없었던 것으로 여기며 어른이 된다. 지워진 과거 속 아이들은 어른이 된 자신과 마주친다. 그러나 아이는 어른이 된 자신을 알아 볼 수 없고 어른이 된 아이는 과거의 아이를 외면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고통스런 삶 속에서 막연히 죽음을 기다린다. 죽음이 구원이라 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 뒤에 펼쳐질 것이라 믿는 아름다운 세계 안에서의 안식 역시 죽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허상이다. 허상을 붙잡지 않고 현실 속에 있을 때, 거울 속의 자신을 보지 않고 거울 밖에 있는 나를 인식할때 세계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손에 잡힌다. 순간만을 손에 쥘 수밖에 없는 이 삶 속에서 말이다. 영원은 결국 순간들의 무한한 연결과 확장 속에서 손에 잡히는 것.

카이에게 영원은 눈의 여왕에게 끌려온 자신을 찾으러 온 게르다의 마음 속에 있었다. 카이의 심장과 눈에 박힌 세상의 모든 것을 나쁘게만 보이게 했던 거울 조각 역시 게르다의 카이에 대한 사랑으로 제거됐다.


그제야 나는 올라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는 그 대관람차가
사실은 대관람차가 아니라,
시간의 실체를 실어나르는
바늘 없는 시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16쪽, 뱀과 물)


이 소설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대관람차의 그것처럼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삶을 포획할 것인가?

눈의 여왕이 깨뜨린 거울 조각이 눈에 박힌 카이는 게르다와 함께 하는 순간의 소중함을 보지 못하게 된다. 거울 조각이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카이의 눈을 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르다가 다시 카이를 찾아왔을 때 카이는 게르다의 따뜻한 심장을 느끼며 게르다와 함께하는 순간의 소중함을 되찾는다.

순간 속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라는 거울 속에는 순간이 없다. 과거란 오래전에 잊혀진 것이거나 지나가버린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울을 깨뜨리면 보이는 순간과 영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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