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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08. 2018

우울한 청춘

청춘의 무게

감독 토요타 토시아키

출연 마츠다 류헤이, 아라이 히로후미, 오시나리 슈고, 타카오카 소우스케


사실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소 우울한 내용의 영화다. (원제는 우울한 청춘이 아니라 靑い春이지만.) 사실 우울할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기까지 해서, 보면서 좀 놀랐다. 사실 우울한 청춘이라는 제목보다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Blue Spring이 이 영화에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계절적인 배경이 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고3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졸업식은 3월에 하니까 계절로 보자면, 봄이 막 시작되는 그 즈음이니까.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그런 측면에서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Blue는 푸르다는 뜻도 있지만, 우울한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우울한 봄인 동시에 푸른 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Blue Spring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래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아 보이는 "문제아"들이다. 별로 되고 싶은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도 없는. 영화는 문제아라고 불리는 이 학생들이 어떻게 평범한 학생에서 문제가 많아 보이는 학생들이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청춘은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를 말할 때 (주로 젊은이들에게) 쓰는 말이기도 하지만, 청춘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청춘은 무엇으로 꽃피워야 할지를 몰라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시기, 내지는 불안함으로 가득찬 시기이기도 하다. 청춘이 좋다고 말하는 쪽은 그래서 주로 그 시기를 지나가본 이들. 주로 노인들일 때가 많다.
 
우리는 흔히 젊음이 좋다고 말하지만, 때론 젊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고통인 시기가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를 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것 앞에서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너무 많은 선택지가 눈 앞에 놓여 있고, 그 중 무엇도 선뜻 집어들지 못할 때. 그럴 때 젊다는 것은, 너무 많은 가능성 위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은 "고통"이 되는 것이다.


청춘은 어쩌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시기가 아니라, 무엇으로 꽃피울 수 있을지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으로 꽃 피울 것인지는 모르지만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꽃이 필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고, 노력하는.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 쿠조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화단에 물을 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떤 꽃이 필지 모르면서, 그 꽃이 시들거나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도 쿠조는 물을 계속 주면서 화단을 가꾼다. 화단을 가꾸면서 쿠조가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그 꽃에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쿠조는 꽃에 물을 주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쿠조는 딱히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 그래도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었던 것 같다. 쿠조가 친구인 아오키와 달리 후에 마음을 잡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오키는 쿠조가 떠난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타락한다. 소중한 친구 쿠조를 잃은 아오키는 쿠조가 그랬던 것처럼 난간 위에 올라가 박수를 치는 위험한 일을 하고, (박수를 많이 치는 사람이 짱이 된다) 그 일의 결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쿠조는 아오키를 구하러 달려가지만, 쿠조는 13번의 박수를 치려다가 난간에서 떨어져 죽는다. 아오키는 왜 그랬을까? 아오키는 쿠조와 절교한 후, 학교의 짱이 되고 그 누구도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는 위협적인 학생이 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더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일도 차츰 싫증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인생을 낭비하는 것에 회의가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난간에 올라갔다.


난간에 올라서기 전에 아오키는 옥상 위에서 해가 지고 밤이 될 때까지 그것을 하염 없이 바라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별로 달라질 것 없는 내일. 아오키는 그런 것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난간에 올라간 것은 애초부터 자살할 생각으로 올라간 것일 것이다.
 
별로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는 오늘이지만, 내일은 다르리란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오늘과 내일이 어떻게 다를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때로는 그 자체만으로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고, 그 자체로 희망이 된다. 살아갈 용기와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모른다는 것은 불안함 그 자체이지만, 반대로 희망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쿠조는 그것을 알았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것에서 벗어나 쿠조는 학교 생활에 충실하며 "자신이 미래에 무엇으로 피어날지를" 생각했던 것이다. 아마 화단을 열심히 가꾸었던 것도, 화단 선생님과 간간히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것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은 불확실해서 힘들고 외로운 시기이기도 하면서 불확실하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빛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이 영화는 쿠조와 아오키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쿠조에게 청춘은 불안하지만 가능성으로 빛나는 푸른 봄이었고 - 아오키에게 청춘은 불안해서 우울하기만한 우울한 봄이었을테지만 - 누구에게나 청춘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꽉차서, 조금은 아프고, 그래서 더 뜨겁고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오늘은 아무 것도 없지만, 내일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차 있는 시기이기도 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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