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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an 15. 2018

소꿉놀이

상처를 환기시키는 소꿉놀이에 관한 이야기

감독 최주용

출연 최규영, 박수현, 강륜희, 배중식


아이들의 연기는 (아직 아이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얼굴에 화장을 한 여자 아이는 "나 지금 연기하고 있어요"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역할 놀이의 일종인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돈을 벌어 오라고 남편을 닦달하거나 아이에게 너 같은 건 필요없다고 야멸차게 말하는 엄마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면서 부서진 가정의 모습을 재현한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독설을 내뱉는 여자 아이에게서 고물상 아저씨는 화장을 벗겨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의 얼굴은 고물상 아저씨와 같은 어른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소꿉놀이는 엉망이 되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가정 폭력의 희생자인 아이에게 소꿉놀이는 자신의 상처를 환기시키는 놀이이며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 아이는 그 자리를 피하지만, 한 아이가 따라와  그 아이의 상처를 헤집는다. 매를 맞는 일조차 철없는 어린이에겐 그저 남의 일이고 놀이일 따름이다.
 
아이는 자신의 상처를 헤집는 그 아이에게 자신이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을 체험하게 한다. 그 아이를 끌고 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허리띠로 그 아이를 때린다.(그냥 바닥을 내리친 것 같기도 한데, 잘은 모르겠다)  
 
영화는 소꿉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 황폐한 공터를 보여준다. 그 공터는 그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아이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삭막하고 쓸쓸했다. 어떤 아이들에겐 그저 조금 따분하거나, 행복한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며 하는 놀이가 어떤 아이들에겐 상처가 된다는 것이. 그들이 받은 상처를 오롯이 드러내는 연극이 된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동시에 그런 가정이라도 지키고 싶었던 듯, 아이는 소꿉놀이 세트를 가져가려고 하는 고물상 아저씨를 말린다. (영화 초반에) 아이들에게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다.


영화는 재건축 아파트에서 촬영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의 심리 상태가 그 황폐하게 비어 있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부재한) 공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낡은 아파트, 비어 있고 부서진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남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파트와 아이들이 동일하게 취급되며 그렇게 대해지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뭔가 버려지고, 방치된 느낌. 이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고 노는 모습에서는 가정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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