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초록지붕 집에 사는 빨강머리 앤이야. 다들 나 알지? 레전드 캐릭터잖아.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감수성 풍부한 소녀. 요즘 애들은 몰라도 언니들은 다 알거야.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라며? 누구에게나 그런 소확행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지. 어린시절에는 셀로판지 하나만 있어도 재미있게 놀았지. 셀로판지 색에 따라 세상이 내 머리카락 색처럼 온통 빨갛게 변했다가 또 파란색으로 됐다가 하는 게 신기했어. 사실 어릴 때는 무엇이든 새로운 법이지만. 그런 것도 일종의 소확행이었을 거야.
아이들은 장난감 없이도 잘 놀줄 아는 재주를 타고나는 거 같아.
나의 소확행은 편지 쓰기야. 대상은 무궁무진해. 언니들도 알다시피 상상력 하나는 내가 또 끝내주잖아. 상상 속 친구들이나 사물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언젠가 오래된 기계가 말을 안 들어서 발로 뻥 찼어. 그러니까 말을 더 안 듣더니 완전히 망가져버렸지 뭐야.
그래서 그 후로는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보았지. 그랬더니 잘 되더라고. 기계도 부드럽게 대하면 말을 더 잘 듣는다더니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어. 이런 경험이 사물에게 편지를 쓰게 한 이유가 됐어. 왜 식물도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면 더 생기 있다는 말도 있잖아.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인가? 그런 책에 나와.
첫번째는 내 오래된 의자에게 편지를 썼지. 삐거덕 거리는 서랍에서 오랫동안 묵혀뒀던 편지지를 꺼내서 말이야. 정말이지, 요즘은 손편지 쓰는 사람들이 얼마 없을 거야. 편지지도 조만간 희귀템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싶어. 실시간으로 깨톡을 날릴 수 있는 세상이잖아.
의자에게 쓴 편지 궁금해? 그 편지는 이런거야.
“안녕? 의자야? 오늘도 내 무게를 견디느라 네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겠구나. 하지만 덕분에 난 오늘 하루도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단다. 오늘 하루도 너에게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뭐 대충 이런 거야. 나의 소확행이라는 건. 어쩌면 외로워서 이런 편지를 쓰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와 오랜시간 함께한 물건에게 편지를 쓰면 그 물건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더 소중히 다루게 되는 것도 같고 말이야.
너의 소확행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