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속의 인간
16. 상식
버린 게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의 눈동자가 보였다. 나는 대답할 자격이 없지 않은가?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옳았다. 내게 맡겨진 역할은 그저 ‘아빠’면 충분했다.
잠깐 시간을 내서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딸을 만나러 나온 아빠. 그 역할만 연기하면 되는 거였다. 그녀가 원한 것은 생물학적 아버지의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다 망쳐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예요?”
얼음 송곳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 그녀였다. 갑자기 아이의 행방이 궁금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냥 좀 걷고 있는데요.”
“아이는요? 같이 있나요?”
“아뇨. 저 혼자 있습니다.”
“못 찾으신 거로군요.”
“네. 못 찾았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소용 없다니까. 뭐, 어쨌든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보수 입금했으니까 계좌 확인해 보세요. 케이크 값 안 가르쳐주셔서 대충 셈해서 조금 더 넣었어요.“
“죄송하지만 돈은 됐습니다.”
“돈은 됐다니요?”
“그냥 일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요. 받은 셈 치죠.“
“받은 셈 친다니요?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지, 왜 안 받아요? 당신은 나한테 당신의 시간을 팔고 노동력을 제공했어요. 전 그 대가를 치르는 게 계산이 맞고요. 어쨌든 전 입금했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뚝-소리가 나더니 전화가 끊겼다.
“자로 잰 듯 정확한 여자군.”
셈이 빠르고 바른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내 기준에서 이 셈은 바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일을 시켰고, 난 그녀에게 내 시간과 노동력을 팔았다. 하지만 노동력이라고 해봐야 그녀의 딸에게 내 얼굴을 보여준 것이 다다. 그것도 몇 분, 몇 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뛰쳐나가 버렸으니까. 애초부터 누군가의 ‘대신’이 된다는 것은, 맡겨진 역할에 맞춰 적당한 시간을 파는 일이다. 보통은 누군가의 먼 친척이 되어 일을 맡긴 쪽에서 준비해준 흰 봉투를 내고 의자에 앉아 지루한 주례사를 듣다가 박수나 몇 번 치면 끝났다. 피로연에서 식사를 하고 배를 채우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내 시간이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1시간 남짓 앉아 있기만 하면 몇 만 원이 수중에 들어왔다.
제공하는 노동력에 비해 일당이 센 편이라 그런지 이 일도 나름 경쟁이 치열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신랑이나 신부의 친구로 많이 온다. 사실 생각하면 문득 문득 가슴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 몇 만 원으로 남편은 물론 애인, 친구, 가족까지 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하면 내가 장바구니에 담긴 공산품이 된 기분이었다. 사람도 쇼핑할 수 있는 시대라니. 외로운 사람들의 시대에는 돈이 만능 해결사라도 되는 것 같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 인형이나 스티커처럼 사람도 원하면 오려서 아무 때나 갖고 놀고 원하는 자리에 붙였다 뗄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가위로 오려져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잠깐 움직였다가 필요 없어지면 폐기처리되는 종이 인형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돈 몇 푼에 영혼을 팔아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더할 수 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나의 육체는 거리의 마네킨처럼 발가벗겨진 채 늘 내 위에 걸쳐질 옷을 기다리고, 남이 입혀주는 옷을 입고 선 채 전시됐다. 하지만 딱히 그런 삶에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내 자신이 한심히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마저도 속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도 바뀌지 않는 건 내가 돈 몇 푼에 남이 걸쳐준 옷을 입고 사기를 치는 꼭두각시라는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 이 무대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