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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r 18. 2024

이 우주의 고독한 닭강정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인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이 찰나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정말 소중하게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의 ‘삶’ 그 자체일 것이다.

닭강정이 넷플릭스 콘텐츠 1위를 차지했다

닭강정은 네이버 웹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박지독 작가의 웹툰 ’닭강정‘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영상으로 제작되어 지난주 금요일에 공개가 되었다.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회사원이된 고백중(안재홍).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던 그는 평범한 회사원의 길을 걷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대기업에는 입사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저항하는 의미로 그는 그저그런 작은 기계 회사에 취업한다. 직원 두 명에 사장이 한 명인 회사.

넷플릭스 닭강정 포토존

대기업에 다니며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던 것으로 언급되는 이 모든 기계의 사장은 최선만(류승룡). 선만은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딸의 머리를 묶어주는 기계를 발명한 것을 시작으로 모든 기계라는 이름의 회사를 창업해 사장이 되었다.


특별한 일 없이 무료하고도 무탈하게 흘러가던 일상.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 의문의 보라색 기계가 도착한다. 백중은 회사에서 제작 주문한 피로해소 기계인줄 알고 그 기계를 회사 안에 들여 놓게 된다.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의 딸 민아(김유정)가 맛집으로 소문나 있는 백정 닭강정을 사 들고 회사로 찾아온다. 민아는 의문의 기계가 피로해소 기계라는 말에 그 안에 들어가게 되고 닭강정을 보며 “닭강정!”이라 소리친다. 그 후 그 기계 안에서 민아는 사라지고 닭강정만 남아 있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중과 선만은 그 기계가 자신들이 주문제작한 그 기계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선만은 딸이 닭강정으로 변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민아를 짝사랑하고 있던 백중과 선만은 닭강정이 된 민아를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린다. 극 초반 연극적으로 느껴지는 연기 톤과 과장된 몸짓 등에서 이질감을 느낀 이들도 적지 않은듯 하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고 하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초반의 다소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연극적인 대사와 연기는 의도된 연출로 보인다.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하는 설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기본 설정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또 그런만큼 참신한 느낌도 주지만 동시에 시청자들이 이 이야기에 쉽게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진지한 대사와 현실성 가득한 연기가 얹어졌다면 오히려 더 작위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부러 연기 디렉팅을 그렇게 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 드라마는 ‘왜’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다소 재미없을 수 있다. ‘왜’에 초점을 맞추면 개연성이 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에 초점을 맞춰서 봐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어차피 사람은 닭강정으로 변할 수 없다. 그건 웹툰 작가의상상에서 출발한 허구의 설정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이기도 하다. 이걸 개연성 있게 풀어낸다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는 이야기적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강정으로 변한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한 메시지를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외계인의 관점은 우주의 관점이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아주 작은 점처럼 보이고 그 지구에 사는 인간의 시간이란 찰나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외계인에게는 하루의 시간이지만 지구인에게는 50년이 걸린다.


보라색 기계는 외계인들이 지구에 관광을 하기 위해 타고 온 기계였고 그들이 고향 별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지만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그 통로는 차단된다. 외계인들은 긴 시간을 견딘 끝에 기계를 찾아내게 되지만 그 기계가 고장이 났고 단 하나의 기계만 한 번 정도 작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외계인들의 대장은 자신이 닭강정으로 변한 민아를 데리고 가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우주에서의 하루는 인간에게는 50년이었다.


딸을 되찾아야 하는 아버지는 딸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어렵게 딸을 떠나 보내는 결정을 하게 된다. 그는 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회사를 다른 직원에게 맡기고 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백중에게는 하고 싶던 음악을 하라고 권한다. 그는 건강을 관리하며 민아를 기다리게 되고 그 사이 모든 기계는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또 백중은 뮤지션으로 크게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기다리던 민아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외계인이 닭강정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 외계인들의 별에서 그 기계가 폐기됐다며 대신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왔다며 그에게 버튼이 달린 기계를 내민다. 그 소식에 충격을 받은 민아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백중은 고민 끝에 외계인이 닭강정과 함께 건넸던 버튼을 눌러 시간을 되돌린다. 자신이 살면서 이룬 성공 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민아와 사장님의 삶을, 그들의 행복이 존재했던 그때를 선택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 외계인의 기계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결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외계인은 모두 우주로 돌아간 상태이며 지구에 남아 있던 기계는 고장난 상태였기에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 해도 그 기계가 작동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외계인은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이므로 그들의 시간이 인간과 똑같이 흐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간을 되돌리는 기계 역시 외계에서 온 물건이므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외계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여진다.


또 초반에는 아버지인 선만이 화장실을 갔으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가지 않았으므로 셋이 닭강정을 맛있게 먹었다면 민아가 다시 닭강정이 될 일은 없을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끝난 거 같다.


내게는 시간의 유한함과 소중함, 이 삶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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