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집념이 빚어내는 인간의 아름다움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를 보고 왔다. 재일교포로 알려져 있는 이상일 감독님의 영화인데 에도 시대(일본의 예술과 문화의 부흥기로 알려져 있는)에 시작되어 꽃을 피웠던 민중극이며 일본의 전통 공연 예술인 그 역사가 300년이 넘는 가부키를 주제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와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아이돌 그룹의 인기로 인해 한류가 세계적으로 열풍이 일어 일본에서 한글을 배우지 못하면 대화에 끼지 못한다고 할 정도라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는 한글을 배우는 것이 유행한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재일교포는 오랫동안 일본 내에서 일본의 명문대를 나왔어도 차별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입지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대다수의 재일교포는 이런 배타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본 이름을 사용한다. 일본 이름이 아닌 경우 더 차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에서 애니메이션도 아닌 실사 영화로 천만 관객을 재일교포인 이상일 감독이, 그것도 일본 전통 예술 가부키를 소재로 만든 영화로 동원을 했다는 사실이 영화 외적으로도 주는 의미와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배우들 연기가 국보급. 진짜 ‘예술’ 그 자체인 영화. 옥상에서의 장면은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되는 느낌이라 특히 인상적이었고.
백로 아가씨를 연기할때 키쿠오의 춤은 정말 백로를 연상시켜서 키쿠오의 모습 위에 백로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느낌마저 있었다.
백로 아가씨는 가부키 극 중 하나로 인간을 사랑한 백로가 아가씨로 변해 그에게 사랑을 전하지만 거절 당하고 다시 백로로 돌아와 슬픔 속에서 춤을 춘다는 내용을 갖고 있는 가부키 극이다. 가부키는 여자가 출연할 수 없어 남자가 여자 역할을 연기하게 되는데 이 여자 역할의 가부키 배우를 온나가타라고 부른다. 이 영화는 온나가타의 길을 걷는 두 남자 배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가부키는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 벽이 일본 내에서도 높은 편으로 젊은 세대는 가부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고, 가부키 자체가 계승이 어려워 대대로 가르쳐 내려오며 이어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집안에서 가부키를 대대로 계승해온 명망 있는 집안의 후손으로 자란 인물 슌스케와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취미로 가부키를 하던 야쿠자의 아들 키쿠오이다. 이 영화는 야쿠자의 아들 키쿠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슌스케의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가부키의 세계에 더 깊이 매료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뭔가 아름답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여운도 깊고. 좋은 예술 작품을 감상한 느낌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부키 공연을 보면서 가부키는 절제의 미학이 담긴 움직임과 춤, 연기를 기반으로 하는 연극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불호는 취향에 따라 갈릴 것 같은데, 연세가 꽤 있으신 분들도 혼자 영화를 보러 오셔서 재미있다고 하신 것을 보면 대중성이 그래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집념과 열정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관이 요즘 시설이 좋아서 그런지 의자가 기본적으로 푹신푹신한데 뒤로 젖혀지기도 하고 버튼 누르면 발도 편안하게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그런지 간헐적으로 코 고는 소리가 좀 들리기도 해서 약간 웃겼다. (웃참하느라 혼났네) 개인적으로는 잠 오거나 그러진 않던데.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계속 앉아 계시는 분들이 계셔서 쿠키 영상이 있나 했는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니까 쿠키 영상은 없다고 한다.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키쿠오가 스승이며 가부키 대가인 슌스케 아버지의
대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기 전 극심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공포에 떨며 슌스케에게 한 고백
키쿠오와 슌스케의 관계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키쿠오가 명예만 쫓아가는 인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건 아닌 것 같은 것이 옥상에서의 장면이 키쿠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잘 말해준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는 계속 춤을 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보았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부모님을 잃고 무엇에도 의지하지 못한채 방황했던 키쿠오를 붙잡아준 가부키의 아름다움이었고 빛이었다. 예술에 대한 헌신으로 빚어지는 아름다움이었다.
키쿠오가 여러 논란으로 나락을 가게 됐을때 그는 작은 선술집에서라도 공연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이 여자인줄 알고 추파를 던지며 다가오는 손님과 시비가 붙게 되고 흠씬 두들겨 맞는다.
그는 옥상에서 술병을 입에 대고 마시며 괴로워하다가 춤을 추고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를 사랑하는 여자는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지만 그는 계속 춤을 춘다. 그러자 여자는 “대체 뭘 보고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키쿠오는 여자가 가버리고 다시 홀로 남게 된 옥상에서 넋이 나간듯 웃으며 자신이 뭘 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부키 춤을 추면서.
나는 선술집에서의 장면과 그 이후에 이어지던 옥상에서의 대화와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쟤는 저렇게라도 가부키가 하고 싶은 거구나. 가부키 밖에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부키에 대한 열정과 예술혼이 절절하게 느껴져 마음 아팠고 또한 경이로웠다. 슌스케가 아픈 다리로 공연을 하고 무대에서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공연을 마치는 장면 또한 그런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내게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자 분투하는 인간의 상징으로 비쳐졌고 또한 정확히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오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