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주문

[멋대로 쓰는 21세기 窓 #1]

by 권기범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을 나와 코엑스로 향하는 출구 바로 오른쪽에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맥도날드가 자리 잡고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고객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카운터가 아니라 무심하게 일렬로 늘어선 4개의 자동 주문기다.


검은색 패딩 점퍼를 입은 여대생, 사무실에서 갓 나온 듯 가벼운 니트만 걸친 직장인들은 저마다 결제를 위해 지갑을 한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메뉴를 꼼꼼히 정한다. 비스듬히 서 있는 주문기의 배치 탓에 주문을 하는 손님들은 옆에 서 있는 다른 손님을 보지 못한다. 멀찍이 서서 이들 주문 인파를 바라보자면, 그야말로 "오토메이션"을 외쳤던 20세기 학자와 기업인들이 원하는 장면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하지만 자동 주문기는 아직 그렇게 친절하지 못하다. 옆에 선 다른 손님들은 어떤 메뉴를 선택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처음 찾는 사람은 무엇이 인기 메뉴인지 알 수가 없다. 또 분명 '세트 메뉴'를 선택했는데, 콜라 미디엄 사이즈를 선택하면 1000원이 추가된다는 내용이 나오면 이 돈이 실제 추가되는 것인지 그냥 보여주기 식인 것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깔깔 웃으며 매장을 찾은 2명의 직장인 여성들이 대화를 나눈다.

"이번에는 내가 주문해볼래. 이제 나도 주문할 수 있어"

"그럼 니가 해볼래?"


매장 입구에서 왼쪽 2번째 자동 주문기로 향한 여성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여성이 한참을 머뭇대자 결국 일행은 뛰어나가 옆 자리에서 주문을 도와주고야 만다. 그마저 포기하자, 결국 분홍색 유니폼의 직원이 나타나 주문을 도왔다. 몇몇 중장년 남성들은 주문을 하다 포기해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옆에서 친절히 하나씩 눌러 대신 신청해주고 만다.


어렵사리 주문을 끝내고 메뉴가 나오는 카운터로 가면 자동 주문기에서 시작한 기계적 분위기는 계속된다. 예전처럼 "6046번 손님~" 하고 외치는 직원은 없다. 다만 카운터 왼쪽 위에 부착된 30인치가량의 모니터가 반짝반짝 '6046'이라는 번호를 출력한다. 손님이 카운터 위에 올라온 접시를 들고 떠날 때도 "맛있게 드십시오~"하는 인사는 없다.


자동화된 곳은 비인간적이라고 인문학도들은 비관한다. 그러나 그 '비인간적인' 주문기 앞에 서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번엔 뭘 먹을까 하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향해 일견 설레는 눈빛을 보낸다. '맛있는 걸 먹으면 그만이지'하는 사람들과 자동 주문기의 궁합은 꽤 좋아 보인다. 현대인은 외롭다는데, 그렇다면 자동 주문기는 가장 현대인적인 주문기인가.


오후 12시 10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든다. 장기하와얼굴들의 노래가 매장에 울려 퍼진다. '당신도 결국엔 날 떠날 거잖아요/아무래도 난 상관이 없어요/그 사람마저도 나를 떠났잖아요/아무래도 난 괜찮아요.'


AKR20150812090200030_01_i.jpg 보도자료 속 사진에 담긴 모델들 같은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출처: 연합뉴스)



[창: 窓] 이란?

-1982년 동아일보 사회면에서 시작해 아직까지 게재되는 시리즈.

[멋대로 쓰는 21세기 窓] 이란?

-SNS와 동영상으로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현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차분히 글로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하다 생각, 그 시절 감성으로 2017년을 해설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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