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집단’은 없었지만 ‘나쁜 놈’은 있더라
2월 20일 아침 출근길이었다.
모피st 털모자에 털목도리를 하고, 짙은 갈색 두툼한 가죽 가방을 든 노인이 지하철에 올라탔다.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석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출근 시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는 가운데 앉은 7개월 차 임산부의 다리를 핸드백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고는 그 임산부(임신부라 함이 더 정확하지만 유난 떨지 않겠다) 앞에 서 있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다리가 아프지만 젊은 사람이니까 양보를 할게.”
그런데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임산부의 남편이었다. 음,, 그는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약간 짜증을 내며 말했다.
“임산부인데요?”
남편이 대답했다. 조용한 지하철에 목소리가 들리자 몇몇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노인이 대답했다.
“아니 그래서 양보를 한다고. 임산부는 핑크 좌석에 앉아야지. 여기는 노인석이야.”
노인석이 아니다. 정확히는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 우선석' 정도가 맞다.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는 좌석 가운데 등받이 근처에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을 위한 좌석입니다’라는 글씨가 쓰여 있지만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 보이질 않았다. 대신 창문에 붙어 있는 임산부 픽토그램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여기 임산부 그림 있잖아요, 예?”
으아닛 젊은 놈이 한마디를 안 지고 대답하다니. 노인은 아니꼬운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 네 알 겠 습 니 다!” (정말 이렇게 끊어서 말했다)
그는 가는 내내 가방으로 임산부의 다리를 쿡쿡 찔렀다.
임산부들은 보통 보건소에서 받은 임산부 배지를 핸드백에 달고 다닌다. (초기 임산부는 안 준다만)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핑크좌석, 즉 임산부 배려석과 얽힐 일이 많다. 일곱 달 동안 의도치 않게 정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봤고, 전해 들었다. 핑크좌석에 앉지 않고 서서 가는 사람들, 만원 지하철이라 별 수 없이 핑크좌석에 앉은 사람들, 별생각 없이 핑크좌석에 앉은 사람들, 앉아 있다 임산부 배지를 보고 바로 양보해준 분, 핑크좌석이 아니라 일반 좌석임에도 벌떡 일어나 양보해주신 분, 핑크좌석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눈치를 주는 분, ‘내가 양보를 해줄 것 같냐?’는 눈빛으로 뚫어져라 임산부 배지를 쳐다본 놈,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를 빤히 쳐다보던 놈 등.
결과적으로 양보를 받은 적도 많고, 그냥 서서 간 적도 많다. 신문기사처럼 ‘좋아요’ ‘나빠요’의 두 가지 중 하나로 주제를 잡고 싶진 않다. 말 그대로 ‘배려석’ 이기 때문에 매일처럼 양보받길 바라지도 않았다. 물론 부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붐비는 지하철 인파 속에 섞여 출근하다 보면 솔직히 앞에 앉은 누군가가 일어나 양보해주길 바라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의무가 아니라는 것도 알기 때문에 굳이 이들을 탓하진 않는다.
재미있었던 점은 내 안에도 어떤 편견 같은 게 있었다는 것이다. 특정 성별 또는 특정 연령대가 ‘핑크좌석’을 더 무시할 것이라는 편견. 왜일까? 인터넷 탓이다. 흔히 인터넷에서 핑크좌석 논란은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논란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차별과 역차별, 지나친 배려 같은 논란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편견이 강화되기 마련이다. 자,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려보길 바란다. 내 ‘사고의 방’에서 핑크좌석에 앉은 이는 누구인가? 남자? 여자? 노인? 학생? 직장인?
정말 그럴까? 누가 양보를 하고 누가 앉아서 가는가를 전수조사를 할 수 없는 노릇. 그렇다고 취재를 지시할 후배 기자도 없다. 음 결국 부인과의 메신저 대화를 살펴봤다.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 초까지 대화 중 ‘양보’ ‘임산부석’ ‘임부석’ ‘좌석’ 등으로 검색해 관련한 경험을 다시 되짚었다.
그 결과 양보를 받았던 경험을 적은 것은 세 차례. 남성 2번, 여성 1번이었다. 그리고 핑크좌석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내용은 11번. (횟수는 별 의미가 없다. 아무래도 사람은 부정적인 경험을 더 잘 기억하고 이야기했을 것이기 때문. 실제로도 양보받아서 앉아서 가고 있다는 대화를 했던 기억이 3번 이상이다) 11명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성의 경우 20대가 2번, 중장노년이 1번, 특정이 안 된 경우가 1번이었다. 여성의 경우 중장년이 3번, 20~30대(추정)가 3번, 특정이 안 된 경우가 1번이었다.
아주 편협한 기록이지만, 이렇게 보니 ‘핑크좌석을 무시하는 특정 집단’ 같은 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핑크좌석은 사실상 여성 전용석!’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양보를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 경험적으로는 30대 남성이 많았지만 그렇게 특출 나게 잦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사이에 임신부를 배려하는 문화가 아직 조금 부족할 뿐인 것이다. (왜 임신부를 배려해야 하냐고 물으면 사실 철학적 논쟁으로 들어가는 부분이라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사실 임산부 배려석에 큰 관심이 없었다. 부인이 임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쓸데없는 집착이 시작된 건 2월 중순 겪었던 한 가지 기억 때문이다.
어느 날 출근길 임산부 배려석에 부인이 앉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배려석 위에 무슨 표시가 돼 있었다. 위 기사 사진처럼 네임펜?으로 엑스자가 표시돼 있었다.
음, 어렵게 앉아서 가는 부인의 머리 위로 엑스자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오버겠지만,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임신부들을 생각하니 부글부글 끓었다. 묘한 수치심까지 올라왔다. 경찰은 뭐하나. 이걸 그린 인간을 공용물건손상죄로 입건하지 않고.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사처럼 ‘임산부 혐오’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쓰고 싶진 않다. 임산부 배려석을 부정하는 게 임산부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논리 비약에 동참하기는 싫으니까. 그렇지만 저 일을 벌인 분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온 객차를 돌며 저런 표시를 할 기력으로 다른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 네임펜에 쓰인 잉크가 아깝다. 혹 불만이 있다면 연락해달라. 경찰에 연결해드리겠다. 입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