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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Sep 04. 2015

기사의 행간을 읽고 싶은 당신에게

문장 '끝'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사는 딱딱하다. 군말을 잘 붙이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기본적인 객관성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심을 숨기진 않는다. 기사에 대한 기자의 자신감은 보통 문장을 통해 드러난다. 일부 표현은 무의식적으로 사용된다. 또는 의식적으로 집어넣는다. 소송이나 수정 요구 등 후폭풍에 대비하는 것이다.  


문장 하나에도 기자의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에, 문장을  읽어내면 기사의 신뢰도를 평가할  있게 된다.  기자가 얼마나 확신을 갖고 기사을 썼는지   있다는 말이다.


  기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사족 붙이기'다. 짧은 기자 생활을 통해 사족이 갖는 뉘앙스를 대강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골라 봤다.


#1 ~것으로 확인됐다

포스코 관련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 조상준)는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사진)이 이상득 전 의원 측근이 실소유주인 회사에 거액의 일감을 몰아준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인 것으로 2일 확인됐다. _ 2015년 9월 3일자 동아일보

  어떤 경로가 됐건 그 사실에 대해 공신력 있는 사람(또는 문서)을 통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앞에 나열된 내용에 대해 기자가 거의 확신했을 때 주로 사용한다. "내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틀리지 않아!"라는 느낌이다.


  혹은 팩트에 힘을 싣기 위해 쓰기도 한다. "뜬 소문이 있었는데, 내가 취재해봤더니 이러저러했던 것으로 딱 나왔어!"라는 느낌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 된다.


북한 관련 보도에 '확인됐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건 매우 드물다. 그만큼 추측성 보도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 ~것으로 알려졌다 / 예상된다

검찰은 정 전 회장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의 주변 인물에 수익을 주기 위해 또 다른 협력업체가 설립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_위 기사

  살짝 애매하다. 정황상, 또는 백그라운드 취재(당사자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취재한 것을 말함) 결과 나온 이야기들이다. 100% 확실하다는 자신은 없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혹은 취재가 되었지만, 공식 취재원이 확인해주지 않을 때 쓰기도 한다. 예리했던 문장의 칼 끝을 살짝 뭉개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확인했다' 보다는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나쁜 기자는 이 표현을 악용한다. 확인되지 않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악의적으로 쓴다. '아무개와 아무개가 결혼할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이다. 잘 보면, '어디에' 가 없다. 나중에 시비가 되면 '세간에 알려졌다' '업계에 알려졌다'고 변명한다. 알려진 것 자체는 사실이 맞지 않냐는 것이다.



#3 ~라는 지적이 나온다 /  ~것으로 보인다 / ~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폭로전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진행돼 국민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_1997년 11월 7일자 동아일보

  이건 그냥 추측이다. 혹은 업계에서 나오는 뒷말 또는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그냥 기자 개인의 평가다. 그도 아니라면? 그냥 할 말이 없어서 덧붙인 말일 수도 있다.


  즉 이런 표현이 나올 때는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곱씹어 봐야 한다. 기자 개인의 의견일 수도 있다. 혹은 평범한 보도 기사에 무리하게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4 ~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한전이 ‘원전사고 정보공개지침’을 무시하고 월성원전 사고를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_1999년 10월 7일자 동아일보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확인하지 못했을 때 쓴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을 때도 이런 표현을 쓴다. 그냥 '~알려졌다' 식으로 쓰면 가벼워 보일까 봐 살짝 힘을 준 것이다. 강한 비판조랄까.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국정원 댓글 개입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의 기사들이 있다. 국정원이 어떤 댓글을 얼마나 썼는지 확인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 기자들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는 식으로 썼다. '내가 확인은 못했는데 이럴 것 같아!'라는 느낌이다.



#5 ~한다 > 할 예정이다 / 할 계획이다 / 할 수도 있다

  아마 이 표현들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쓰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하지만 대개 말꼬리가 길어진다는 것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내일 집에 간다' 보다 '내일 집에 갈 예정이다'가 덜 명확해 보이듯이.



#6 ~라고 말했다.

ICT 업계 관계자는 “최근 최 대표가 예전 다음커뮤니케이션 고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카카오 내에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옮길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며 “신임 대표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나면 다음카카오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_2015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인용을 위해 큰따옴표를 쓴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가장 힘을 줘야 할 리드 문장에 인용문을 쓴다면? 이건 '책임지고 싶지 않다'라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 혹여 소송으로 진행되더라도 "취재원의 말을 옮긴 것일 뿐 거짓을 보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해야 하기 때문.


  혹은 사안이 매우 중대해 조심해야 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확정되지 않은 계획이거나 사실이라는 말이다. 언제든지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인용자의 권위를 활용하기 위해서 이렇게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문장에 힘을 주고 싶다는 의도다. 이 정도의 권위자가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느냐는 식이다.


  전자와 후자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이렇게 구분하면 된다. 그 문장의 앞뒤에 '~라고 전해졌다' '~인 것으로 보인다' 등의 모호한 표현이 뒤따라오는지 보는 것이다. 실제로 위 인용문의 경우 앞 문단에 '알려졌다' '전해졌다' 등의 표현이 나온다. 이는 앞선 사실을 전달하는 데 조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출처: pixabay.com


  행간 읽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요즘은 기사가 수도 없이 쏟아져 꼼꼼하게 기사를 읽기 어렵다.


  단 아래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면, 이는 기자가 정말이지 너무 너무 자신의 취재 결과에 자신이 있으며 정말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고 보는 편이 좋다. 날짜, 매체 이름, 취재한 내용이라는 자신감, 거기에 '확인됐다'는 확인 사살까지 덧붙였으니 말이다.


~한 것으로 0일 00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 사족.

물론 모두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기사 작성 공부가 덜 된 기자/매체는 이유 없이 위 표현들을 남발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기자의 의도는 기자만 알기 때문이다. 또는 불순한 의도로 쓰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다. 이런 경우를 구분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상식에 기대는 것.



# 사족2.

이 글에도 교묘한 장치들이 많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아닌데?'라고 말할 다른 기자 선후배들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힌트는 '부사'다.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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