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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Apr 11. 2016

왼손잡이, 오른쪽 끝에 앉다

매거진을 열며

왼손잡이, 서성이다


식당에서, 앉는 위치에 가장 집착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높으신 분의 의전을 맡은 총무팀 담당자? 치마를 입은 여성? 제 생각에는, '왼손잡이'입니다.


많은 왼손잡이들은 식당에 앉을 때 왼쪽 끝자리를 노립니다. 그래야 옆자리의 오른손잡이와 팔꿈치가 부딪힐 일이 없기 때문이죠. 특히 좌석 사이의 간격이 좁은 회식이나 구내 식당에라도 간다면, 마음은 더욱 급해집니다. 어깨를 잔뜩 움추린 채 밥을 먹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왼손잡이는 식당에 가면 재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식사 자리에서 가능한 '왼쪽 끝자리' TO는 2개에 불과하니까요.


만약 실패한다면? 그래도 별 수 없습니다. 밥 먹는 손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이럴 땐 '손목 꺾기' 스킬이 꽤 유용합니다. 팔꿈치는 '<' 모양으로 길게 빼는 대신 몸통에 최대한 붙이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는 겁니다. 단점은 많이 소심해보인다는 것.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오른손잡이 친구와 대화를 나눌 찬스를 얻게 되겠죠.


글을 쓸 때도 손목을 꺾어야 합니다. 왼손잡이의 비애..


어쩌다보니 오른쪽 테이블 끝에 앉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식당에서도 왼손잡이, 직장에서도 왼손잡이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기준에 따라 정치 성향을 좌우로 나눴을 때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얼마 전 SNS를 떠돌던 '지지 정당 테스트'를 해봤더니, 가장 잘 맞는 정당으로 국민의당이 1위인 것으로 나왔는데 말입니다.


어쨌든, 왼손잡이인 저는 왼쪽 끝자리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가운데도 아닙니다. 오른쪽 끝자리 언저리 어딘가에 앉아 있는 듯합니다. 손목 스냅을 이용해 겨우 밥만 챙겨 먹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저를 싫어합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엔가 있을 왼쪽 자리를 찾아 떠나라는 사람도 있고요. 대놓고 실망했다고 말하거나, 눈에 띄게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평생 나눈 대화라고는 10번도 채 되지 않는 어떤 분은 "넌 아직도 그 회사 다니냐?"고 묻고는 혀를 차더라고요.


네, 저는 이 자리에 의도적으로 오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비싼 밥을 먹는 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4년 반이 지났습니다.


왼손잡이라도 왼손을 쓸 수 없는 상황도 생기죠.


나쁘지 않았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건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았습니다. 공자님 말씀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도 배움이니까요. 물론 손목을 꺾어가며 밥을 먹을 때나, 가끔 팔꿈치를 뻗었다가 옆 자리 상사의 팔꿈치를 쳤을 때는 여전히 민망하거나 화가 납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었고,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만일 제가 남들이 생각하던대로 왼쪽 끝자리에 앉게 됐다면 지금쯤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오른쪽 자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생각이 오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겁니다. '북한사람=뿔 달린 괴물' 이라는 반공 시대의 고정관념처럼, '보수우파=이기적인 사이코패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무지는 불신이 되고, 불신은 분노가 돼 또 다른 뿔 달린 괴물을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상과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보고, 평가했을 겁니다. 그보다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왼손잡이여 만세! 출처: 심슨


밸런스


이 매거진은 오른쪽 끝자리에 앉은 왼손잡이의 일상이 담깁니다. 슬프게도, 누군가를 속시원하게 할 글이 나오진 못할 겁니다. 모든 이슈에 왼쪽 아니면 오른쪽 한편에만 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신자나 철새 취급받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자면 욕 먹기에 딱 좋은 내용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기억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도 모르면서 식탁 가운데 어디쯤에 앉아 자기가 한가운데라고 생각하거나, 한쪽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보기 보다는 말이죠.


오른쪽 끝자리에서 왼팔을 뻗으면 식탁 가운데 놓인 메인 메뉴에 어떻게든 젓가락이 닿을 것 같습니다. 비록 그 행동이 식탁에 앉은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하겠지만요. 그러다 보면 신기루 같았던 '균형'이 손에 잡히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출처: Salisbury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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