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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y 18. 2016

드라이하게, 제발 드라이하게

정당한 비판은 드라이할 때 가장 강력합니다

* 메인 사진 출처: 플리커 | Patrik Nygren


  기자들이 수습 교육을 받거나, 현장 기사를 쓸 때 꼭 한번씩은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어가 섞여 있지만 굳이 우리말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야, 좀 드라이하게 써라."
"아이구, 감정이 너무 뚝뚝 흘러 내린다." 
"형용사, 부사 좀 쓰지 마라. 팩트만 써 팩트만." 

  기사에 팩트만을 쓰라는 지시는 기본적으로 객관적 시각을 보여주기(혹은 그러한 코스프레를 하기) 위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반대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가장 객관적으로 쓴 글'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글에 감정이 뚝뚝 묻어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아 많은 언론사들이 관련 기사를 내놓은 가운데, 이런 글(1)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글이 문제 삼은 칼럼(2)은 바로 이겁니다.



위에 링크한 기사를 보면,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구구절절 설명했다' '가관이다'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 '일베와 무엇이 다른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나옵니다.


이 글을 본 사람들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고도로 비꼰 글인 것 같은데, 마무리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전두환 씨를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으니까요. 물론 '글쓴이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을 쓴 것도 잘못 아니냐'고 하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앞의 기사처럼 감정이 뒤죽박죽 섞인 글은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물론 더러는 통쾌하겠지만요) 특히 글쓴이의 주장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감정에는 감정으로 대응하게 되는 게 사람의 한계입니다. 이런 글을 보는 소위 '보수 독자'들의 눈에 글 내용이 들어올까요? 오히려 이런 생각만 남길지도 모릅니다. 


"너무 흥분하셨네 ㅉㅉ."


출처: 한겨레 (http://well.hani.co.kr/556321)


그래서 '드라이하게' 써야 합니다. 


기자들이 '건조한 글'을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문장이 무미건조해도, 글쓴이의 관점과 입장은 팩트로서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드라이하게 써야 글쓴이의 주장과 감정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란 것은 원래 자연스럽게 우러나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아닐까요? 자신의 감정을 빈틈 없이 드러내면서 공감을 요청하는 글은, 오히려 반대 세력의 '선동'이라는 프레임에 걸려들게 될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건강한 토론 문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주로 보수지에서 등장하는 '한심하다' '부끄럽다' 등의 표현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감정적으로 비난하거나 훈계할 때나 쓰이는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화나게 만들고, 자기편은 통쾌하게 만드는 표현들은 '편가르기' 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듭 생각합니다. 드라이하게, 제발 드라이하게 써야 한다고. 


정당한 논평, 정당한 비판이라면 그 '감정'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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