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를 끄는 변명입니다. 욕하면 상처받습니다.
삼성은 입사 때부터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굉장히 강조한다고 합니다. 얼핏 북한 아리랑 공연의 소조 연습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매스 게임이 대표적이죠.
제가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A 씨가 친구이자 삼성전자 직원인 B씨 앞에서 갤럭시S 제품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의 표정이 매우 많이 일그러졌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기업 홍보팀이나 할법한 표현들로 자기 회사를 옹호하더라고.
그럼 삼성 직원들은 모두 충섬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제 생각은 NO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이 100%인 회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많은 삼성 직원들은 여러가지 이유 ― 연봉 부모님 가족 노후 명예 ― 로 회사에 다닐 뿐입니다.
삼성 직원들은 굉장히 똑똑합니다. 몇몇은 광신 수준으로 자신의 회사를 옹호합니다. 이들은 정말 회사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혹은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위치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만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이는 충성의 논리가 아니라 '보안' 또는 '안위'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 회사'에 대해 꽤나 객관적입니다.
하지만 '삼성 직원 = 삼빠' 라는 논리는 통용됩니다. 정말 그런가요? 직업과 직장이 일치할 확률이 낮은 한국에서라면 이 논리는 잘못됐습니다. 1980, 1990년대였다면 모르겠습니다.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종신 고용을 보장하는 '우리 회사'에 푹 빠져들 법도 하죠.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요즘, 청년들 중 회사와 자신의 꿈을 동일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마찬가지로 '보수 언론 기자 = 보수 인사'라는 논리도 넌센스입니다. 'A라는 의견을 개진하는 언론사의 직원들은 모두 A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도 편견입니다.
뭐 그런 당연한 소릴 하고 있냐고요? 꼭 당연한 소리는 아닙니다. 지난주에 한 행사에서 처음 만난 분이 건넨 첫마디가 이랬습니다. "아 동아일보 기자시라고요? 와, 저 제일 싫어하는 신문이 동아일본데…." 다분히 공격적입니다. 심지어 제 이름 석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요. 편견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른바 '보수 언론'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편견을 내려 놓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만났던 한 민주노총 지부장이 그랬습니다. 지금은 고위 관계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아는 기자들 이름을 꺼내며 잘 있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들은 모조리 퇴사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기자들이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삼성 직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연봉, 명예, 가족, 노후 준비, 대학원, 스펙, 은퇴 준비, 혹은 소통의 창구... 너무나 다양합니다. 정치 사회 문제에 아예 무관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또한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립니다.
70년대 기자로 일했던 한 원로 선배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80년대 기자는 지사적 기자였지. 그런데 요즘은 뭐 그렇게 되나…." 그 시절 기자상에 젖어 언론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물론 개인적 영달과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희생적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모든 기자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거나 그런 삶을 원할 것이라는 편견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기자라는 직함만 빼면 그냥 일반 사회면 기사와 다를 바가...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하소연을 줄줄이 늘어 놓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번 국정 농단 사태를 맞아 많은 언론이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중입니다. 물론 대통령에 보냈던 애정 공세를 거짓말처럼 접고 비판 일변도로 돌아선 몰염치한 사람도 있습니다. '얘기가 안 되는' 가십까지 꺼내 들어 편승하려는 사람도 많고요.
하지만 그 반대에는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평소 하고 싶었지만 허들에 막혀, 혹은 자기 검열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비로소 지면에 꺼내든 사람도 많습니다. 스스로 조금이나마 상쇄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노조나 협회를 통해 자성의 목소리를 낸 기자들고 있고요.
네, 비겁하다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사실 별 주제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결국 기자는 지면으로 승부하는 거니까요. 저부터 비겁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네요. 분발해보겠습니다. (그러나 들고 일어나겠다고는 절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