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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Jan 22. 2020

이국종, 피해자와 가해자, 여론

이러지 말자는 의미에서 남겨두는 글

피해자의 위치에 오래 있다 보면 결국 주변의 지지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의 심리다.


MBC 무한도전에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등장, 신들린 감정 결과를 쏟아내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던 송형석 정신과 전문의(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의 책 <나라는 이상한 나라> 중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라는 챕터에 나오는 내용이다.


탄탄하고도 솔직한 내용에 여러 번 감탄하며 책을 읽었지만 유독 이 부분이 머리에 깊이 남아 있다. 냉정한 문장 탓에 '가해자를 옹호하는 건가' 싶겠지만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큰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도 '이번 이야기는 꺼내기가 조심스럽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논리는 이렇다. A와 B가 있다. A는 가해자, B는 피해자다. B가 A의 가해 사실을 폭로했다. 여론은 당연히 B의 억울함에 동조한다. 그러면 이제 상황이 바뀐다. B는 피해자이지만 갑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B는 여전히 스스로가 을이라고 생각하며 A가 알아서 뭔가 조치해주길 기다리거나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됐을 경우 주변 사람들도 B에게 시큰둥해진다는 것. 그러면 B는 자기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주변을 비난하게 되고, 또 실제로 주변의 아무도 그를 돕지 않게 되며, 결국 주변의 지지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출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고통스러운

A와 B의 현실


읽어 내려가기 고통스러운 논리다. 나 또한 그랬다. 그렇지만 밑줄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다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다. 시기적으로 가깝게는 미투 운동 때 보았고, 대학 때부터 봤던 여러 '장기 집회' 현장에서도 보았다.


역전을 노리는 A는 '여론이 뒤집히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포착하고 역공을 시작한다. '저희는 성실하게 협상하려 했는데..' '보자 보자 하니까 이건 아니죠?' '적당히 좀 해라'의 논리가 어필 가능해지는 그 시점 말이다. 나부터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길어지는 이슈에 '피로감 호소' 운운하는 기사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기자적인 감각이라 자위하며 '그거 맨날 하는 말 또 하는 건데, 기사 써야 되냐'며 일축했던 그런 이슈들.


여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지만 체감했다. 한 번 돌아서면 쉽게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잊지 말자"며 계속 기사를 써도 돌아선 여론은 잘 돌아오지 않는다. 비난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동조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회색지대가 늘어나고 잊혀진다. A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요즘은 B도 이런 여론의 움직임을 알고 '단계별로 폭로'하는 방법을 쓰지만, 결국 공격하는 사람이 먼저 지치는 게 싸움의 정석 아닌가.


이런 상황은 B에게는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함께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것 같았지만 어느새 식어버린 여론은 상처가 되고 응어리가 돼 이들을 괴롭힌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송 원장은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사실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이국종 교수와 여론


이국종 아주대 교수 이야기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를 직접 본 적은 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묘하게 나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함께 취재를 했던 후배 기자들의 이야기와 보고 내용으로 미루어보건대 직선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단순하다는 게 아니라 의뭉스러움이 없고 직설적이라는 것이다.


그를 만났던 후배 기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후배 기자가 이 교수와 친해져 보려 나름 친근함의 표현을 했다더라. 그런데 아주 혼쭐이 났다고 했다. 기자는 공부를 많이 하고 빠져나갈 구멍 없이 물어봐야 하는 것이지 장난처럼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이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나는 의뭉스럽거나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논리와 이성으로 이야기하자'라고.



최근 이 교수가 격정적인 말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아주대병원 원장, 아주대, 보건복지부, 비난의 범주도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받아내고 용서하고, 얻어내면 넘어가려 했던 그가 이번에는 자포자기한 듯하다. 한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센터장이라는 실무와 온 세상을 상대로 한 정치를 동시에 해야 했던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의 말들은 작심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의 성격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교수는 계속 그렇게 할 것이고, 언젠가 여론은 시큰둥해질 것이고, 송 원장의 말대로 '피곤하다' '적당히 하라'는 여론이 언젠가 고개를 들게 될 것이다. 세상은 그의 자극적인 워딩은 기억하면서 “충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못 지켜 직원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더 이상은 못한다”던 목소리에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고립무원인 그에게 여론마저 힘이 되어주지 못할 시점은 기어이 오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정부, 정치권의 관심도 식을 것이다.여론이 개인을 대하는 방식이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남들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구단의 체질을 개선하던 단장이 강제로 물러나게 된다. 단장을 자른 모기업의 임원에게 한 선수가 다가가 복직을 호소한다. 상무는 "좋은 성적을 내면 된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단장이 돌아올 수 있냐?"라고 묻는 선수. 상무는 이렇게 답한다. "아니 그냥 좋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기억될 수 있을 뿐"이라고.


나는 이국종 교수가 '좋은 사람이었구나~'라고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차라리 말 함부로 하고 성격이 좀 모났지만 한국 사회를 바꾸고 원 없이 노력한 '현재 진행형'의 인물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주제넘게 이런 글을 쓴다. 여론이여,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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